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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안 쪽으로 걸어간다. 무엇이 보이냐 하면 악천후 시 통행금지라고 되어있는 바다 수면에 거의 닿게 되어있는 다리와 그 위를 놓여있는 왕복 2차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보였다. 인도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으면 바다가 만져지는 신기한 도로라서 모두들 여기로 찾아오는 것이겠지. 그렇게 바닷가로 나있는 낮디낮은 다리를 건너며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걷는다.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그냥 해수면에 닿을락말락하는 다리의 건너편. 굳이 설명하자면 미개발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남동구와 카페가 들어선 예쁜 거리로 유명한 북동구의 경계 정도 되겠지. 어차피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데다 카페로 가기 위해서는 구계를 넘어야 하기도 해서 일단은 가까운 카페를 찾아 버스를 타고 상록숲을 지나 버스가 종점으로 맞이하는 카페거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통나무로 된 카페로 들어가 벽화가 되어보자. 우선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에그타르트를 주세요. 여기 오래 앉아있어도 되죠? 카페에서 벽화로 있는 것이 취미라서요. 멋쩍게 웃고 시킨 것들을 받아오고 벽화가 되어 가만히 앉아 폰을 두드리고 창가를 바라보고 남아도는 시간이 싫다고 툴툴거리기도 하고 트램 정류장이 근처에 있었구나 하면서 트램 몇 대가 왔다갔다 하는 것과 버스가 트램 바로 옆에 서며 서로 손님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창가를 물끄러미 보다가 갑자기 내 어깨를 두드리는 점원과 함께 놀라기도 하고 여기 그냥 드리는 거예요, 벽화님하면서 받은 레몬타르트 한 판을 물끄러미 보는 것도 어쩌면 부끄러워.
다시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타고, 기사님 낮은다리 쪽으로 돌아서 가주세요 하면 미터기만 돌아가는데 괜찮아요 물어보는 느낌에 낮은다리의 해수면에 닿을 듯한 그 특유의 느낌, 택시 특유의 조용함과 걸을 때보다야 굉장히 시간이 절약되는 고마움과 함께 남서구에 들어왔다는 표지판과 내릴 곳인 시험정원에서 고마웠다고 미터기에 찍힌 꽤 비싼 요금을 다 내고 시험정원에 들어간다. 새로 심긴 식물에 세인트존스워트가 있다. 여기서 이거 모종 파나요 하니까 어디선가 모종을 갖고오며 처음으로 얘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거저 드릴테니 잘 기르시라고 사라지는 누군가와 천천히 슬퍼지는 내 기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쪼그려 앉아 가방을 열고 빛나는 마법의 약을 꺼내 입에 털어넣고 온실의 천장을 바라보지요. 여기는 따뜻하구나. 점점 식어가는 내 몸을 보는 누군가가 당연히 괴롭지 않기를. 그래서 오늘은 지출을 심하게 했고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해. 하지만 아까 나에게 모종을 준 누군가가 들어와서는 비몽사몽해 하는 나를 보고 약병을 보더니 놀라서 나가. 이런, 좀 늦길 바라. 왜냐하면 약이 다 퍼지기 까지 아직 2분이 남았어. 여기서 죽게 해줘. 가까운 병원에서 나를 실어간다고 해도 출동하는데 2분은 넘을거야. 그렇게 내가 축 늘어지면 더 이상 눈을 안 떴으면 좋겠지마는….
꽤액, 이게 뭐야. 토하고 싶어. 그리고 누가 등을 두드리는 느낌이 나고 궤엑하고 나는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하고 쉬어요쉬어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아니 왜 자살앰플을 물었대 하는 소리에 티오황산 필요해요 아니 그 정도로면 해독이 됐을거야 생아몬드 냄새나요 하는 소리가 막 오고 가는데 아, 몽롱해. 이 자식들이 진짜 나를 왜 살려내냐. 게다가 수면제까지 먹인 느낌이야. 살고 싶지 않아서 모든 돈을 털고 체력을 떨어뜨리고 여기에서 생을 마감하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한 온실 속에서 자살앰플을 물었는데 이렇게 살아나다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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