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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꿈을 꾸고 일어났다. 트램이 없어진 도로 때문에 집에 틀어박힌 내가 냄비를 돌려주려 뻘짓하는 꿈이었다. 도로에는 여전히 자동차와 달리는 트램이 건재했고 냄비 얘기는 꿈 속 얘기인 것 같다고 안심하자 새끼손가락을 물렸다. 푸른 요정 하나가 싫은 표정을 띄고 나타났지.

일단은 나가보자. 트램은 그대로 누군가를 태우고 여기저기로 떠나고 있다. 버스도 트램을 보조하고 있고 자동차와 택시는 그 둘을 경멸하는 것도 같았다. 망상이 아마도 꿈에서 나타난 느낌이다. 그런 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몰려있나 싶어서 그런가 싶어서 일단은 나가보았다. 남서쪽의 분주함이 여전히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어쩌겠어, 여기가 하유섬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니까 내가 적응해야 해.

추워서 옷을 껴입고 나가는 지금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나가서 일단은 아직은 꽃이 하나도 안 피어있는 시험정원을 지나쳐 그 옆의 어떤 브랜드의 카페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하나 주십사 한다. 벌벌 떠는 것보다야 그렇게 해결하는 편이 낫다. 인형 한 쌍과 턱을 괴고 벽화가 된 누군가와 창 밖으로 보이는 사늘한 바깥이 나를 멍때리게 했다. 그래서 내 번호를 세 번이나 부르게 해서 미안하오. 내 자리에 다시 커피를 가지고 앉아서 트램이 종착하는 길가를 바라보고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킨다. 그리고 스튜 냄비를 받은 꿈은 그냥 개꿈으로 취급한다.

커피를 마셔도 졸린 것이 아무래도 커피가 아니라 깔루아를 마신 것 같아서 가로등 기둥을 잡고 정신을 차려보려니 주변이 흐리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트램이 경적을 울린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카페에 앉아있다. 뭔가 싶어서 앞자리를 바라보니 나에게 스튜 냄비를 넘긴 아이가 순진한 미소를 띄고 양 손등으로 턱을 괴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 일이 있냐고 물어보자 고개를 젓는다. 뭘 원하니? 고개를 젓는다. 냄비 건이야? 고개를 젓는다. 나도 고개를 젓고나서 탁자에 머리를 박는다. 쪽팔려. 그런 광경을 보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아이를 보니까 정신이 들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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