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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바퀴 달린 집

두번의 봄 2020. 3. 14. 21:11

뒤에 매달고 다니는 작고 귀여운 바퀴 달린 집에 살고 있다. 고양이가 야옹거리면 밥을 주고 전화가 와서 이제 일을 시작하자고 그러면 바퀴 달린 집에서 나와 공방으로 들어간다. 여기를 차린 지도 오래되었다. 직접 살고 싶은 집을 사려니 너무 비싸고 짜증이 나는데다 나라에서 주는 집에는 들어가기 싫어서 직접 바퀴 달린 집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공방의 모두는 일이 하나는 끝날 것 같다며 빨리 해치우자는 눈치를 보이고 그렇게 수출 나가는 하나가 완성이 되었다. 누가 항구까지 끌고 갈거냐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걸린 사람에게는 점심값을 얹어주며 잘 갔다오라고 하는 그런 시간이 지났다. 다들 공방을 차린 나에게 깍듯이 대하고는 하는데 나도 여기서 일하는 처지니까 그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수출 나간 것 다음으로 진행하던 것의 옆쪽 프레임에 못질을 한다. 하나하나 끼우고 하나씩 정리해가면 만드는 재미도 있고 주문한 쪽이 재미있어 하며 자기 자동차에 카라반을 걸고 떠나갈 때에 공방의 모두는 벅차오르는 마음이다. 다만 요새는 주문한 쪽에서 주문을 취소하거나 우리 공방이 남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인수거부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마음이 아프다.

항상 완벽을 꿈꾸고는 하지만 완벽할 수도 없는 것이 안 팔리면 동료들의 월급 문제가 생기고 그 때문에 마을사무소에 들르면 죄송하지만 지원은 어려울 것 같아요 하는 소리와 내 차 뒤에 붙어있는 카라반을 귀여워하는 사람들이 매우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다시 돌아온 공방에 일을 다시 시작하는 와중에 프레임을 이루는 나무 중의 하나가 수평을 이루지 못해서 다시 해야 하는 귀찮음과 일이 잘 풀리지 않아요 하는 동료의 불평에 어쨌든 잘 될거야 하면서 뒤돌아 한숨을 쉬는 나를 용서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간 마음을 무겁게 해보고 오늘 일이 끝나고 공방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다들 카라반 만들기가 쉬운 작업이 아님을 알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는 다른 녀석들이 부럽구나. 공방을 위해서 카라반에 살고 집을 살 수 없을거라는 계산만 나오는 내 통장을 바라보면 고양이가 야옹. 그렇지, 먹고는 살아야 겠지. 오늘도 고양이는 귀엽고 저녁은 간단하게 삶은 감자로 때우고 근처로 차를 몰고 나가서 음료수를 사고 폰 요금을 충전한다. 그리고 내일 다들 쉬라고, 하나 수출은 보냈으니 하루는 쉬자고 문자를 보낸다. 다들 놀라네.

고양이는 뒷좌석에 태우고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달린다. 바다에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되어있는 다리를 지나서 아름다운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 귀여운 카페거리가 나타나고 곧 숲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곳은 상록특별구다. 캠핑하기에는 좋지만 의외로 요정들이 장난쳐서 기분 망치고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 곳. 오늘은 여기서 자려고 한다. 고양이 녀석은 불안한 듯이 애옹대지만 괜찮아, 죽으러 온 것은 아니다. 고양이를 안심시키며 차에서 내렸을 즈음에 묘하게 하얀 아이와 마주쳤다. 카라반이 궁금해?

안을 구경시켜 주고 마음에 들면 주문하라고 명함을 준다. 요정놈 장난에는 진지빨고 달려들라고 하니까 그렇게 해본다. 그렇게 나오니까 조금 당황한 성 싶으면서도 그 아이가 말하길, 마음에 드는데 나는 차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어. 그런데도 카라반 하나 살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나는 한숨 한 번 쉬고 숲 속 요정에게 팔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거지만 차 없고 운전면허 없어도 카라반은 살 수 있다고 하니까 갑자기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짓더니 하나 계약할게라며 눈을 반짝인다. 그저 얼굴에 손을 얹고 글로브박스에서 계약서 하나를 꺼내서 원하는 대로 적어. 그러면 일 년 안에는 여기로 끌고올게 하니까 응응거리며 대단히 기쁜 얼굴로 슥슥 적어낸다. 계약서를 적어내고는 그 어떤 일이든 잘 되게 마법을 걸어주겠다고 하고는 폴짝폴짝 뛰면서 숲 속으로 사라진 요정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카라반을 달고 여울오름까지 올라가는 것은 거의 죽으려고 하는 짓이나 다름없지만 하중제한은 없으니 반클러치와 저단 기어를 잘 사용해서 올라가보자. 그리고 올라가서 보는, 어쩌면 초라한 산 위의 용천 연못을 바라보며 이게 막히면 하유 사람들은 목말라 죽는다고 고양이에게 이야기 해도 알아들으려나. 일단은 같이 카라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미리 삶아놓은 감자와 사놓은 음료수를 마시고 커피도 한 잔 마시자. 여기의 물을 길어다 쓰는 것은 상관없지만 물이 샘솟는 연못에 동전을 던지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내국인은 여권 정지돼서 외국 교도소에 갇히고 외국인은 바로 추방되는 이상한 곳이야. 커피를 위해 여울오름 물을 긷는 것은 문제 없다. 따뜻한 것이 주는 위안이 있는거야. 그렇게 여울오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양이랑 함께 삶은 감자와 커피로 저녁을 먹고는 내일 다시 해야 할 일과 새로 받은 주문, 그리고 뜬금없이 쉬게 된 동료들을 달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고양이가 따뜻하고 보드라워서 잠들어버렸다. 꿈도 굉장히 묘한 꿈을 꾸었는데 현장주문을 한 요정이 미안한데 주문을 취소하면 안 되겠냐고 해서 거절했더니 공방을 불살라버리는 내용이었고, 그 때문에 공방으로 돌아갈 시간은 많이 벌었다.

다시 공방이 열리고 동료들에게 잠시 상록숲에서 쉬다 왔고 새 주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일이 이상하게 잘 풀리기 시작했다. 수평이 안 맞던 한 군데를 고치기 위해서 뜯어놓은 부분이 수평도 잘 맞게 다시 조립되어 있고 요정놈의 주문은 그렇게 까다로운 주문도 아니었다. 또한 인수거부 때문에 묵혀놨던 카라반을 찾으러 가겠다는 연락도 왔고 새 주문도 드물게 세 개나 더 들어왔다.

과연 요정놈이 주문한 카라반이 얼마나 근사해질까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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