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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트램이 서있고 자동차들이 그 뒤로 쭉 서있다. 어차피 트램은 추월하면 안 되니까 안에서 라디오나 들으며 참는 중이다. 그렇게 선로이자 도로 위에 나란히 놓인 긴 뱀과 친구들은 청신호에 일제히 골목을 빠져나간다. 할 수 없으니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숄더체크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중앙으로 나오면 긴 뱀은 정류장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리를 건넌다. 시킨 물건을 받아가래서 목공소로 갔건만 내 물건이 아직 완성이 안 된 것 같다고 일단은 기다리라 한다. 오래는 못 기다린다고 얘기하며 무리하게 차 끌고 나온 그 가격은 하겠지 세면서 기다린다. 몇 시간을 기다려 의자 하나 내가 시킨게 나온다. 미안하다고, 예정보다 일이 밀렸노라고 사과하지만 어쨌든 나는 다 괜찮아. 미안하다면 나도 미안한거야.
차는 왜건이라 의자가 쏙 들어간다. 그렇게 집으로 도착해서 의자를 어디에다 둘까 생각을 하고 또 한 결과는 일단 창고행이다. 이런 의미없는 일을 하고나면 왠지 마음이 뿌듯해져서 나는 이 정도의 낭비는 할 줄 아는 놈이야 하고 스스로 가슴을 친다. 좋아하는 콩깍지 튀김을 만들기 위해서 식용유 한 병을 남김없이 웍에 붓고 콩깍지를 맥주를 넣은 튀김반죽에 묻혀서 바삭바삭 튀겨내면 그게 참 맛있는 요리지 하면서 스스로 감탄하고 발만 춤추고 그러다보면 건지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렇다. 창고에 처박아 둔 의자도 튀기면 맛있겠지 하면서 콩깍지 튀김을 하루 식사로 먹는 궁상맞음이 있는 것이다. 밖으로 잠깐 나가서 편지함을 열어보면 돈을 내라는 편지가 수두룩하지만 무시할래. 나는 일하기 싫어서 안 하는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마을사무소 가서 소명해도 이러고 있으면 짐승된다는 막말을 공무원 입에서 듣기는 싫었어. 그래도 뭐 어쩌냐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도 하루를 그냥 보냈다.
낭비의 극치는 쓸데없는 의자를 사고 구태여 차를 몰고 그것을 옮기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걸어서 가도 되는 바닷가에 택시를 타고 가고 쓸데없이 길 가던 아이에게 점심을 사주고 노변 주차구역에 주차된 차에다 낙서를 하려다 걸리고 벌금을 내는 그런 인생이 낭비되는게 너무나 즐겁다. 하지만 이러다가 짐승되겠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내 안에서 지옥의 분노가 터져나올 것만 같아서 자리를 떠버린다. 쓸데없이 트램을 한 정류장 타고가서 내리고 또 타서 한 정류장 가서 내리고 하면 환승도 안 되고 짜증날 테지만 돈이 있다면 그대로 낭비하는게 맞겠지. 저 인간 짐승같다고 소리를 듣지만 뭐.
다음 날에 일어나보니 나는 어느 창문에 개대가리가 비춘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요정들 무리가 팔짱을 끼고 안녕하십니까 금수 씨라고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링 반데룽을 하는… 현실과 마주쳤다. 팔짱을 끼고 나를 둘러싼 요정들에게 그럼 내가 뭘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요정들이 하래서 목공소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손을 찧었는데 부풀어오르고 있다.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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