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민폐의 화통

두번의 봄 2020. 3. 25. 22:32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나는 나무를 실컷 피울 수 있는 곳으로 갔어요. 하유섬의 법이 나무 태우는 것까지는 봐주는 셈이라 상록숲의 취사가능지역으로 가서 요정들이 만들어 놓은 목탄가스 화통을 구경하죠. 신기해요. 목탄가스 화통의 원리라는 것은 나무를 가득 담아놓고 밀폐한 화통 밑둥의 구멍에 불을 지르면 아랫쪽부터 타오르니까 공기가 부족한 환경에서 나무가 타게 되고 따라서 불연소한 나무의 연기가 화통 윗쪽의 구멍으로 나오게 되는 원리라는거죠? 그리고 요정들이 나무 태우려고 시킨 것은 잘 알겠고 불 지르다 숲 태워먹으면 쫓겨날 준비하라고 하고 소방차를 부르더니 유유히 사라져요. 한낱 호기심을 위해서 남에게 방해를 주면 안 되겠죠.

근처에 목재상이 있어서 톱밥과 부탄가스를 얻어왔어요. 화통에 톱밥을 엄청 넣고 밑둥에 뚫린 구멍에 부탄가스 토치로 불을 지릅니다. 벌겋게 타오르기는 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겠고 소방서 분들이 톱밥으로 가스를 거르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줬죠. 그리고 윗쪽에 뚫린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연기를 아랫쪽으로 몰고 올 관을 설치하는 것을 잊어서 검댕을 뒤집어쓰고 말았어요. 실험은 이렇게 만들어진 가스에 불만 붙으면 끝납니다. 그래서 부탄가스 토치로 연기가 나오는 관에 불을 붙여보았지요. 약하게 붙습니다. 성공이에요. 다 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거냐고 소방서 분들에게 묻자 그래야 할거라고 말하는데 어쩌죠, 나는 이미 저거 쓸모없는데.

화통의 불은 하루종일 타올라서 집에 갈 수 없었어요. 결국에는 이게 무슨 연기냐며 튀어나오는 모두를 진정시키고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는 하지만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소방관 분들과 기껏 만들어줬는데 버릴거냐고 화내는 땜장이 요정만 있을 뿐. 그래서 화통 위를 열고 물로 불을 끄려고 하니까 다들 말려요. 어째서죠? 다들 이거 다시 쓸 생각이야? 나는 이거 필요없어. 왜 내가 이거 하나 하려고 다들 괴로운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강제로 끌래. 다들 말려요. 결국 불은 그러고 나서 좀 있다가 꺼졌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어요.

세상에, 옷에 검댕이 묻었어요. 프릴이고 뭐고 검정색이야. 그렇게 지금 당장 어두워진 숲에서 집에 갈 수도 없으니 일단은 어느 오두막에 누워요. 내가 괜히 그랬나 싶어서 눈물도 나고 모두 나 때문에 쓸데없이 고생해서 짜증도 나요. 그래서 화통은 어쩔거냐고 묻고 화난 내가 망치를 가지고 와서 부수려고 하면 또 다들 말리겠지. 결국 화가 난 채로 잠이 들어버려요.

다음 날, 일어나서 골칫덩이 화통 앞으로 가보니 좀 의외의 장면이 있었어요. 저에게 톱밥과 부탄가스를 줬던 목재상이 내가 쓸모없다던 화통을 쓰고 있었어요. 웬일이냐며 나를 보는데 저 화통 쓸거냐고 버릇없이 튀어나오는 제 입 좀 용서해줄래요! 목재상은 말없이 끄덕이고 이런 실험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서 저는 벙쪄버려요. 그나저나 물도 데우고 그러네? 오토바이에 실어서 움직여볼까 하는데 아니다 싶다고 하는 목재상이 이해가 안 가요.

그러면 저는 이거 그대로 둬도 되는 거겠죠?

'작문 > 하유 배경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폐의 목탄차  (0) 2020.04.15
  (0) 2020.03.26
하루를 폐기처분하기  (0) 2020.03.23
낭비의 말로  (0) 2020.03.22
어떤 대변인의 환멸  (0)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