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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는 것도 짜증나게 되는 어느 하루가 시작되었다. 트램이 덜컹이는데 버스랑 다를바가 뭐냐, 뜯어라 하는 인간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도로 위에서 자동차랑 경단을 이루는 것도 보고 쇠 갈리는 소리와 무료함을 때우기 위한 이야기를 위해서 구태여 트램에 오르는 그런 짜증이 언제쯤 끝나나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괴로움과 멀리 가지 못하고 붙잡힌 그 느낌, 그리고 종점까지 가보며 무료함을 잊자며 잠이 드는 나를 태우고 트램이 달린다. 별로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렇게 빠르지도 않아서 그저 이런 느낌에 몸을 맡기다보면 그저 그렇게 녹아내리게 되는 지리멸렬한 느낌을 실컷 느끼자. 그렇게 남서주택단지를 떠난 트램은 고작 두 정류장을 더 지나서 시험정원 종점에 닿았다. 이제 피는 시절인 매화와 살구꽃이 만개한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어서 왔는가 하면 그저 얼굴이 일그러질 뿐이다. 카드를 찍고 내려서는 천천히 걸어서 정원으로 들어간다. 세인트존스워트가 심긴 초입에서 멈추어서며 트램이 서있는 장면에서 멈추어 선 도로를 보고 정원 안의 아직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꽃이 핀 매화나무와 살구나무를 본다. 화사하구나. 그 화사함이 멈추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화사함에 다른 누군가는 감탄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 화사함과 대비되는 내 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싶어진다고.
시험정원의 물가에서 거위와 오리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거위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표지판 하나와 근처의 카페, 나를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다가오는 순진한 요정이나 인형도 귀찮고 그런 애들 상대해주면 나중에 머리 아프다. 어려운 얘기를 해서 쫓아내고 친구될 기회를 차고 벤치에 그대로 앉아 한숨을 푸욱 쉬고 친구가 필요한 인형과 요정이 간 뒤에는 거위가 꽥꽥거린다. 안 돼. 뭘 훔쳐가려고? 거위가 무언가를 뺏어간다는 얘기를 들어보기도 해서 거위 따위나 노려보다가 거위가 이윽고 자리를 뜨고 그대로 벤치에 앉아만 있으면 뭔가 나아가지도 못하니 좀 걸어서 커피라도 사자. 뭐라도 해야 건강하고 곤란하지 않으므로 커피를 사서 다시 벤치에 앉을 것이다. 그렇게 벤치에 다시 앉자마자 내 옆자리에 하얀 인형소년 하나가 얌전히 얼굴을 붉히며 앉아있었다. 여기 왜 왔니? 고개를 그저 젓는다. 하릴없이 공원에나 앉아있으면 누가 욕한다고 해도 그냥 여기 있을 뿐이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같은 얘기를 하고 정말로 내가 무얼하든 그 아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약속을 지켜주고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아서 그 아이를 퍽 믿게된 나는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고 아이고 늦었군 하면서 트램 정류장으로 뛰었다. 어리둥절해서 트램을 잡을 수 있는지는 신경쓰기가 너무 싫었고 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만 얘기하면 트램을 놓쳤다. 정류장에서 된소리를 내뱉고 걸어가려던 찰나에 다시 그 벤치에 앉아있던 수줍은 인형소년과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내 손수건을 돌려주고는 가만히 미소짓고 떠났다. 살펴보니 가방이 열려있었다. 떨어진 물건을 곱게 받을 여유가 그 와중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하지만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를 트램을 타지 않고서 갈 엄두는 나지도 않았다.
트램을 10분이나 기다리며 이제 뭐라도 오면 좋겠다 싶을 때마침 트램이 와줬다. 사는 동네라서 지리도 다 알고 자주 답답할 때마다 가는 시험정원이건만 트램을 타지 않으면 무릎이 시는 병이라도 걸렸나 싶을 정도로 몸이 많이 나약해졌다. 그 답답함을 곱씹으며 겨우 세 정류장 거리인 나의 목적지를 향해 트램은 달렸다. 그리고 내릴 정류장에서 할 수 없이 내렸다. 그리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오고가는 버스와 트램을 세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들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도저히 집까지 걸어갈 무릎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네 번 지나가고 트램이 그 사이로 세 번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집에 들어갈 생각이나 하게 되었고 그게 한 시간이었다. 행인들은 내가 트램과 버스를 세며 벤치에 앉아있는 꼴을 보아하니 자폐인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이윽고 고개를 떨구고 힘겹게 자리를 옮겼다.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집 앞의 고등어무늬 고양이가 기분 좋게 자고있어서 차마 깨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자동차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차고를 큰 소리 내면서까지 열기는 싫었다. 고양이가 깨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보였고 내 집 앞에 지나가는 트램과 버스를 세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고양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양이가 문득 귀여워져서 쓰다듬었더니 잠에서 깨서는 여기가 어딘가 하는 행동을 보이더니 자리를 옮긴다. 이제 드디어 집에 들어간다. 집에 들어가서 뭘 할지 모르는 이상에는 찬장에서 커피를 꺼내 드립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고 바깥으로 난 작은 창문을 통해서 고양이가 어떤가 살펴보았다. 고양이도 집으로 간 모양이다.
무료한 하루도 절반이 다 지나갔다. 그렇게 절반이나 지나갔냐고 스스로 감탄하고 내가 무료한 것으로 남이 기쁘면 됐지하는 사실상의 자포자기로 오늘 하루를 다시끔 마저 보내보자고 스스로 자문자답을 날리며 집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고요한 시간이다. 일하기가 싫어서 그저 취업수당도 아닌 기본급여나 받으며 그것을 날리고 사는 삶이다. 할 것이 없고 짜증이 올라오고 그저 숨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지는 지금이 문득 사라지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해가 진 것을 본다. 일자리 찾는데 신문 만한 것도 없지만 지금은 잘 타는 불쏘시개고 문득 나는 차고에 밧줄이 없다는 것을 직접 보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내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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