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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이 가득한 남부의 어떤 마을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로든 가도 싶었기에 일단은 어디론가 나온 것이죠. 모내기가 끝나고 박하는 꽃이 지는 서늘한 여름의 정경이 펼쳐지는 그 풍경을 경쾌하게 달리다가 문득 정차대에 차를 세우고 잠시 걸어봅니다. 길을 잃어서요.
이내 차에 다시 타고 우회전. 쭈욱 펼쳐지는 낮은 주택단지를 지나 어느 박하밭이 펼쳐집니다. 내려서 향기를 맡으려고요. 이런 풍경이 있는 삶은 정말 아름답지요. 주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생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즉석에서 물을 끓이고 박하잎을 띄워서 박하차를 즐기고 조금 수확하기도 해요. 어차피 집에 도착하면 시들어서 난감해지겠지만. 향이 좋아서 멍하니 그 곳에 있습니다. 조그만 멧밭쥐와 장난 치기 좋아하는 요정이 박하밭에 나타나고 여기에서 멍하니 있는 저에게 뭐가 그리 생각이 많냐고 물어보지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이 버려진 박하밭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상당히 수상해. 어디 아픈 것은 아니지 하고 물어보는데 정말 귀찮아.
조금 더 차를 몰고 나가봅니다. 북서쪽 어딘가랑 맞닿은 쪽인데 바닷가가 있고 나무딸기가 자라는 모래섶이 있었죠. 조금 피곤해서 나무딸기를 많이 따서 먹었지요. 그래도 피곤해서 차에 올라 창문을 약간만 열고 에어컨 틀고서 시트를 젖히고 누웠어요. 조금 열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편히 잘 수 없는 환경에서 편히 자지도 못하고 식은 땀에 차서 일어났어요. 눈 앞에는 자전거가 바짝 서있었는데 흑발회안의 남자애가 왠지 수상하려나 하며 노려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죠. 미안해. 설마 인형이니? 고개를 저어요. 눈 색깔이 예뻐. 그러니까 도끼눈을 뜨고 더 경계하는 아이. 아냐, 누가 너 보고 악마 같대? 깜짝 놀라며 경계를 푸는 아이. 여태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구나. 그러자 고개를 돌리고 마을까지 데려다 달라고 나에게 부탁해요.
내 자동차가 노치백 스타일이라 뒷자리를 착 접으면 묘한 인상을 주는 소년의 자전거는 거뜬히 실을 수 있지요. 그리고 나는 남서구에 살아. 그 쪽으로 갈거야 하니까 남서중앙까지 태워달라고 하네요. 그 방향으로 가니까 뭐 됐긴 하지만. 간선도로로 들어와 마주치는 두 번째 출구로 나가면 바로 남서중앙. 마을의 한 가운데 트램 정류장에 내려주었지요. 자전거도 다시 꺼내주고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주고. 그렇게 멍하게 떠나는 내 차를 바라보는 흑발회안의 아이가 멀어지고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에 돌아갔어요.
그리고 다음 날, 누가 집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 대문을 열어보니 어제 그 아이가 스튜 먹으라고 냄비를 들고 찾아왔지요. 그럼, 어서 와. 대단히 고마웠나보네. 그러자 울기 시작하는데 자기가 사실은 절벽에서 자전거 타고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는데 왠지 그 근방에 자동차가 서 있길래 꼬와서 시비걸다가 이게 뭐냐고 하는데 횡설수설이지만 여튼 그런 일이 있었다니.
여하튼 티타임이 그렇게 시작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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