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상자 안에 웅크리고 누워서 조금의 시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요정과 이야기를 하거나하며 내 방과 같은 상자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만큼 상자에 인형처럼 예쁜 장식과 함께 넣어져서 깨지기 쉬운 예쁜 그릇처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모두가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 아주 많이 다르더군요. 내가 상자 안에서 꿈꾸던 동화같은 일상은 행복한 끝맺음의 동화책을 덮으면 사라지는 거였구요 내가 상자 안에서는 모르던 비극같은 현실은 상자에서 나오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닥쳐오니까요. 예쁘게 꾸며진 상자 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만큼 모든 것이 무섭고 힘들고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고 모르는 것들 투성이고 알아야만 살 수 있어서 알아야 하거나 알고 싶은 것들을..
그렇게 나는 시계의 한가운데에 누웠다. 시계가 가는 소리와 초침, 분침, 시침, 그것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그 한가운데에. 한가운데의 소리는 시끄럽다. 톱니바퀴, 태엽, 진자, 그것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소리일 것이다. 그렇게 커다란 시계로 된 바닥의 한가운데에 누웠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은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 뿐. 놓쳐서 잡지 못한 시간도 잠시 뿐. 그렇게 잡지 못한 그 순간도 잠시 뿐이지만 내일은 그렇게 잔혹하게, 심란하게, 무섭도록, 또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일을 살지 말자' 그렇게 결정하고 마음을 굳혀도 결국 나는 시계가 설치된 바닥에. 시계가 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시간이 가는 느낌에 빠져서 그대로, 잔혹함과 심란함에 묻혀서 그대로, 시계로 된 바닥에서 천천히 잠을..
체코와 헝가리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서로 나눠갖는 것이 사람의 욕심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 모르는 척이나 광신으로 알던 이들 모두가 그 모두가 벽이 무너지는 것으로 알아갔을 때 쯤에 모든 일들이 일어났지요. 우선 체코는 봄을 맞았습니다. 모든 것이 소생하였으나 억지로 붙여진 나라와는 떨어져 친한 사이 정도는 되었습니다. 헝가리는 가을을 맞았습니다. 40년 전 죽은 양심적인 정치인의 장례가 그제야 치러졌지요. 크고 노란 낫과 망치도 그 때 즈음 사라졌나. 그리고 빨간 장미로 변해갔겠지요.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이 모두가 전부 불모라서 아무도 자신 및 남을 믿지않고 도시만 좋아하고 온갖 자학이나 아집에 빠져서 나도 결국 이런 사람들과 섞이고 뭐 어쩌고저쩌고 하니 그들과 비슷해져서 멍청한 망둥..
하얀색 인상의 자동인형이나 요정. 소심하고 착한 성격. 겁쟁이에 혼자있기 좋아하는 특성. 누가 나를 인형처럼 다뤄준다면 좋겠어. 소중히 다뤄지는 인형처럼 서로 같이 놀면서 머리도 빗겨지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혀지기도 하고 비밀을 간직하기도 하고 외롭거나 살아있지 않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고. 내 마음을 깃들인 새하얀 인형에게는 상냥하게 대해주면서 내 마음을 모르는 다른 이에게는 상당한 궤변론자로 찍힌 저는 내 마음을 깃들인 그 인형에게 내일 죽을거라고 말해두었어요. 그러자 그 아이는 갑자기 눈이 죽더니 같이 갈거라고 나에게 조용히 말해요. 정원처럼 꾸며진 봄 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섬에 사는 내 마음을 깃들인 착한 인형들은 그 마음을 자신들에게 깃들인 사람이 굉장히 괴팍하다는 사실과 그 괴팍함이 일상에..
다 틀렸습니다. 냉대의 한 가운데인데 날씨는 아직도 낮에 덥고 밤과 새벽에 춥습니다. 어떤 의사소통의 이론도 나와 어떤 이해를 맞추지 못해서 땅에 떨어진다면 세상의 모든 의지여, 이제 나를 그만 죽여주세요. 더 이상 내가 바라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즉, 곧 죽을 생각입니다. 눈 내리는 북쪽과 더운 남쪽을 여행하는 것은 이제 영원한 꿈에서 가능할테죠. 언어는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이자 가장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표현조차 남의 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의지여, 모든 이를 전부 사랑하게 만들어버려요. 어차피 세상이 말로 되는 것과 생각으로 되는 것으로 명쾌히 나누어진다면 차라리 희망없음에 나는 죽으려합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던 그 여행의 친구와도 작별이겠군요. 그 친구를 소중히 하고..
아무래도 시대가 변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후퇴의 조짐이 보이는 지금을 살기가 두렵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영원히 싫어하고 편가르기에 힘을 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나는 관에 눕고 싶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여러 이야기를 존재하게 하는데 앞서 그런 과정을 거쳐왔고 서로의 마음없이 그런 과정을 원하는 껍질 벗지 못한 이간질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허우대 멀쩡한 사람에게 기생하며 올바르지 않은 방식의 행동을 부추긴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미친 것일까 말이야. 신경쓰기는 싫지만 어쩌면 그게 고착으로 변해서 서로는 자멸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모두는 신경질적으로 약한 쪽을 건드리고 뜯어내어 서로가 약하지 않음을 반대로 증명하는데 이어서 서로의 추악함에 서로 뒹굴며 죽어가고 있다. 지리멸렬일지도 모르겠지..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내 일주일 용돈을 탕진해가며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 간 적이 있다. 그렇게 그곳에서 매우 감질나게 짧아져버린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지. 그렇게 낭비가 심한 여행을 마치고 8시 경이 되어서였나 수원역에 겨우 도착하기까지 어째서 과학관 한 구석의 아무도 가지 않던 천체관에 신경이 그제서야 쓰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두 주가 지나서야 이렇게 글로 완성하는 나를 용서하는 나의 아량이 있기를 빈다. 그런데 내가 즐겨듣는 노래 중의 하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오늘 같은 밤하늘을 보며 기도하듯 나를 찾던 아이들, 모두 어른이 됐다지 그렇다고들 했어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 밤, 가장 멀리 있어도 가장 빛나고 싶던 이 조그만 몸은 갈 곳이 없으니 나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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