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도 나를 찾아와 주었지요. 그렇게 깨질 것 같이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씨로 우울한 행복을 담아서 하루를 살면 세상은 조금이나마 반짝여요. 하지만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는 섬세함과 여린 마음씨가 그대로 드러나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모두 나를 병들었다고 하면서 귀찮아하고 나를 내칠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여기 박하차와 바삭바삭한 과자를 준비했어요. 박하차가 싫다면 커피를 드릴게요. 그러나 혼자만의 티타임. 너무 외로워서 숲으로 들어가면 달콤한 향기를 지닌 종 모양을 한 하얗고 귀여운 꽃무리가 나를 영원한 꿈 속으로 데려다 주겠죠. 안녕.
…오랜만이에요. 이제 밀물이 들어와요. 누에섬에 들어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가라는 사이렌. 서둘러 나가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어요. 탄도항 쪽으로 가면 나는 싫어요. 왜냐하면 여기 그대로 몇 시간이고 있고 싶어요. 사람은 두렵고 도로는 좁아요. 화성 쪽으로 나가면 오히려 더 무서워요. 이제 그만 나를 붙잡고 쥐어흔들래요? 참 귀찮군요. 이제 다시 썰물이 되어서 나는 탄도항 쪽으로. 모두 떠나버린 이 조그마한 어항에는 아무도 없이 그저 작전 해안이라는 것으로 군인들에게 총 안 맞게만 숨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지요. 자동차 시동을 켜고 집으로 돌아간답니다. 바닷둑을 건너가겠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숨 나오는 동시에 어디론가 가고 싶어져서 전차 정류장에 섰다. 그런데 전차 정류장 뒷편에 버스가 더 먼저 올 것이 뭐람. 그런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한숨 깊게 쉬고 건드린 방향으로 바라보니 봄이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재수 없는 쫄보 소년인형 주제에 이제 나한테는 쫄지 않게 된건가. 뭘 어째.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있으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그러자 쫄보 스위치가 켜져서는 얼굴을 붉히고 딱히 없다고 술술 부는거 뭔데. 가벼운 한숨을 쉰다. 나는 원래 가려던 데로 간다. 북동쪽의 숲이기는 한데 구 전체가 숲이고 내각결의에 의해서 통제되는 두 개의 구 중의 하나인 상록구가 그 곳이다. 카페거리에 가기 위해 트램을 타면 여기를 지나가는데 항상 궁금하고 특이한 곳이라서 생각해서 말이다...
세뇌물의 유형으로 인형화라는 것이 있다고 하네. 희생자가 말 그대로 인형처럼 돼서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도 그만두고, 먹지도 않게 되고, 잠도 안 자고 작품에 따라서는 창고에 처박혀 천장에 매달려 자기를 몇 년간 지속하기도 한다는데 정말 조금만 수틀리면 실제로 나타날 것 같아 무서워. 우울한 기쁨은 저의 기본적인 감정으로 설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쓸데없이 상대의 기분을 살핀다거나 혹은 줄곧 우울한 행복함이나 차분한 우울을 즐기기도 해요. 그게 오히려 진짜 제 모습에 가깝고 그렇게 있는 것이 편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하는 말에 별로 큰 이유를 두지 마세요. 제가 하는 말은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도우미 로봇이 자기에게 입력된 정보를 그대로 출력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원래는..
내가 뭘 할 수 있나. 한낱 소시민이라 더위에 지고 돈에 지면서 돈 생겼다고 듕귁제 휴대전화를 지르는 돈지랄을 해대고 비싼 것을 샀다며 불 속에서 석고대죄 하는 한낱 소인배인 것을. 신문에 투고하면서 밥 벌어먹는 멍청한 인생을 살지 말자. 공사판에서 힘도 안 되는 온실 속 화초가 철근 나르다 죽어서 집에 오는 미련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 외국어 뻥긋거리는 것 하나로 내 나라 모르는 외국인에게 내 나라는 지상낙원이라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는 되지 말자. 자, 이제 뭐가 남나. 나에게 그것들을 빼고 남는 것은 없다. 허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요령껏 없앨 수 있는 내 면허증의 조건 A를 경멸하고 있다. 하지만 클러치를 조질 줄 알고 속도에 맞춰 스스로 변속할 수 있어도 내가 소시민에 쫄보라는 사실은 ..
모두가 검게 변해갈 때, 나는 더 새까매지거나 혹은 회색이 돼요. 왜일까요. 그런데 왠지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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