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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하유 배경의 이야기

빨리가는

두번의 봄 2019. 6. 10. 17:28
급행 시간에 댔다. 열차에 올라 도로 위를 같이 달리던 구간이 끝나면 내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시간은 많다. 하지만 오늘은 급행을 타고 출근한다. 열차는 정시 도착했다. 그렇게 북서쪽의 직장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소규모 중심지에서 부도심의 풍경을 지나면 경계선 녹지 근방에서 지하로 들어가 시내의 역 한 곳에 정차하고 이 열차는 급행이라 앞으로 두세 역에만 정차한다고 네 개의 공용어로 알리며 문을 닫고 출발한다. 오늘의 신문을 읽으며 열차가 내달리는 양 옆으로 지나가는 중앙의 풍경과 한 번 더 지하로 들어간 뒤에 나오면 나오는 온통 나무와 푸르름이 가득한 곳을 빗겨가는 차창, 그리고 다음 역은 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안녕하시오. 그렇게 도착하면 반겨주는 이는 청소부 뿐이다. 일찍 오셨다며 그렇게까지 일찍은 아니라고 말하고 내 자리에 앉아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며 모두와 인사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대부분은 어디에 열쇠를 반납하냐고 묻고 화장실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게 내 일이라면 일이다. 짐을 옮겨주고 방을 치우고 향을 내고 세탁물을 옮기고 방해하지 마세요에 당하는 일이다. 그렇게 이 숙소의 잔심부름 하면서 이 숙소의 집사 새끼는 일을 왜 이리 대충해놓냐 소리를 들으면 내가 먹던 커피를 뿜는 것이 내 일이라고. 그러다가 여기에서 퇴근하면 또 전철을 기다릴 뿐이고 급행을 탄다.

집은 방 한 칸이다. 어쩌자면 이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나라가 추천하는 좀 더 넓은 집을 사양하고 방만 여럿인 이 연립으로 왔다. 어차피 대여금도 싸고 해서 부담이 없는 것이 나는 꽤 가난하기 때문이다. 일은 하고 있지마는 부가비용이 좀 들고 지출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자동차가 갖고 싶어서 이러지만 나에게는 김당이 안 될 물건이라 생각하고 일단은 단념한 상태이고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 빼면 안 갖는 삶으로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고 다니며 일 못하는 집사로 찍혀서 겨우겨우 짤리지만 않으며 있는 지금, 딱히 일상에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적절히 쉴 줄을 몰라 이러고 있다.

하유는 다른 곳보다 느긋하지만 외국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항상 빨라야 한다. 그나저나 남동쪽 농원에서 보냈다고 나 먹으라며 한 그릇 넘겨준 섬머푸딩을 노려보다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일단은 먹어치운다. 그리고 빨리 세탁실로 오라는 연락과 갓 빨아 널은 뽀송한 이불을 손님 방에 깔아넣고 교대가 오면 지적확인 좋아 세 번에 하이파이브, 퇴근!

이렇게 빨리 가서 못 따라 가겠는 일상에 익숙해지고 싶어 죽겠다. 누가 나를 도와주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