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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철은 정시에 출발했고 그렇게 출근하면 내 자리에 누군가 뭔가를 확인해 달라고 쪽지를 놓지. 사흘을 쉬어서 모두의 눈치가 보이는데 모두들 출석카드나 찍읍시다 하면서 또 무의미한 나날이 또 지나가는 것인가 하며 나른한 하품을 한다. 지난 사흘 간의 즐거움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면 그저 일에나 집중하자 하면서 몸에 해로운 독한 커피를 마시고 진짜로 일에 집중한다.

길가의 자동차와 트램이 아직 덜 깬 나에게 이제 괜찮냐고 물어보는 성 싶고 준비해야 하는 여러가지 기획이나 샘플을 살펴본다. 그러다가도 쏟아지는 것이 졸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겨내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즐거움을 위해서만 일하는 누군가는 없겠지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그렇게 따분하면 자동차로 출근할까 생각하며 5부제에 걸리나 확인하고 샘플과 기획 중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세 문건을 골라서 넘겨주었다. 평이 좋아야 하는데. 일단 오늘의 일은 다 끝났고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간다. 집에 돌아가서 일단은 몸을 씻고 짐을 놓고 텔레비전의 광고만 보다가 공영주차장에 나간다. 내가 타고 다니는 2CV 한 대가 그 자리에 있다. 이따금씩만 자동차를 쓰다보니 먼지를 터는 것도 일이었다. 북서쪽에 자동차공방이 생겼다길래 콜라보 기획을 짜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의외로 값이 싸다는 것에 혹해서 바로 이 녀석을 질렀지. 먼지를 다 닦다말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내가 이 섬으로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다음 날은 평일인 줄 알았던 휴일이다. 그래서 공영주차장에 한 몇 달이나 서있던 하유섬 북서공방제 2CV의 시동을 건다. 부다다다다닥. 아차, 초크를 까먹었군. 아무리 오리지널이 아니고 레플리카 혹은 무단카피에 불과한 이 공방제 자동차도 하유섬에서는 굴러만 가고 귀여우면 좋다는 듯이 거리를 경쾌하게 내달린다. 하유 사람들이 다 그렇다. 어차피 실용성과 안전을 내다버릴 작정이라면 무언가에 기대어서 핑계를 대기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초조해진 상태로 좋든 나쁘든 결과를 기다리는 식이지. 남서중앙에서 노면전차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클러치 밟고 1단, 그리고 2단을 넣는다. 적어도 고속도로에는 노면전차가 없으니 편히 운전하겠지만 아무리 섬의 전체적인 기후가 선선한 편이라 해도 에어컨이 없는 차를 모는 것은 고문이다 싶다. 빨리 상록숲에 닿고 싶다는 마음은 고속도로의 동그라미 안의 숫자가, 전광판의 전구간 소통원활이라는 안내가 모두 풀어주었다.

상록숲에 도착하면 여기가 일개 아주 작은 섬나라의 행정구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숲이 깊고 아름답다. 요정이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숲이 베어지는 꼴을 면한 이 곳은 정말로 요정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지. 높은 건물이 많은 하유섬 여타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다른 여기에서 쉼호흡을 하고 답답한 그 무언가에 기대어 답답했던 그 무언가의 무언가를 풀어준다. 넥타이를 풀어던지고 잠시 쉬고 싶을 때에 쉬어주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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