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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중에 갑자기 찾아온 녀석들을 본 그 밤에 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시중의 평범한 자동차가 싫다고 공방까지 찾아온 손님 앞에서 기절을 해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래서 일단 미니의 레플리카로 주문한 그 분들이 가시고 나는 한숨 돌려보려고 가슴쪽을 움켜잡고서 침대로 향했다. 누가 놓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먹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세인트존스워트인가 하는 풀 한 묶음이 침대 머리맡의 스툴 위에 놓여있었다.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고맙네.
그렇게 다시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 직원들을 다시 부르고 몇 개월 만에 드디어 집 대문을 나섰다. 내가 직접 조립한 미니에 시동을 걸고 북서쪽 공방으로 향했다. 밀린 주문이 많아서 언제 철판을 두드리고 엔진을 받아서 달고 자동차정비소에 보내서 배기가스나 등화를 검사하려면 거의 두 달이 넘게 걸리는 작업이라 서두르지 않으면 전부 주문을 취소하는 꼴로 흘러가니까 걔네들은 답답하고 나와 공방은 일 안 하는 곳으로 찍혀버린다고.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북서라고 적힌 표지판의 화살표 방향으로 나가서 공방에 끼익하며 도착. 모두들 공방주인이 불러서 왔노라고 불평불만을 하길래 일단은 내가 은둔하기 전에 공방제 자동차를 주문한 손님들에게 차량 인수의향이 있느냐고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럼 그렇지, 절반이 자동차를 안 받겠다고 한다. 안 받겠다는 주문에는 취소 도장을 찍어 다른 캐비닛에 넣어두고 어제 마치 V처럼 침략하듯 나에게 견적을 부탁한다며 나를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 제 발로 나오게 만든 그 주문이나 소화하자. 원래 있었던 주문의 대부분은 취소되었기에 원활하게 쇠를 두드릴 수 있었다.
공방이 제대로 돌아감을 확인하고 북서중앙으로 잠시 나온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식사하는데 주문이 부들부들 떨려서 점원이 당황한 눈치를 주기도 했고 나와서 미니를 몰면서도 너무 무서운 기분이 들어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연신 살피며 너무 천천히 가는 바람에 뒷차들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 놈의 블루크루드 공장이나 찾아가야겠다. 하유제당 공장 안으로 들어가 넓은 사탕무밭을 지나 증류탑이 보이는 이곳, 연료제조반 인근에서 차를 세우고 증류탑의 꼭대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와서 용건이 무어냐고 물어봤을 때는 약간 동문서답이긴 하지만 블루크루드는 뭘로 만들어지냐고 물었고 탄소와 수소를 철과 반응시켜서 만들죠라는 조금은 뻔한 대답을 던지고는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냥 뭐, 다시 내 공방으로 돌아가면 이제 어쩌면 좋냐는 식으로 몇몇 직원들의 질문에 대충 대답해주고 트라반트 정도면 하유에서 먹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계식 연료펌프를 생각하고 있을 뿐. 트라반트의 연료탱크가 바로 엔진 위에 있어서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더더욱 연료탱크나 가스봄베를 최대한 뒤에다 놓아야 하지 않나 하면서 퇴근이 다가오는 공방에서 철판을 두드리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드디어 17시, 퇴근이다. 직접 조립한 미니에 시동을 걸고 초크를 집어넣고 출발.
그렇게 도착한 상록숲 깊숙히 어느 나무집이 내가 쫓겨나 살고 있는 곳이다. 허나 쫓겨났다는 것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인가 하면서 내가 의회에다 블루크루드 도입하자고 건의하지만 않았다면 하면서 한숨 쉬고 그 나무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요정 몇몇이 장난치다가 나에게 딱 걸렸다. 왜, 내가 여기에서 사는 내내 대문을 두고도 나가지를 않아서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나보지? 그랬더니 장난을 멈추는 일동. 그래, 내가 블루크루드 도입하재서 숲 속으로 추방당한 나쁜 놈에 환경파괴범이다, 됐어? 그러는 가운데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블루크루드 도입은 신의 한 수였고 덕분에 솔방울 주우러 가지 않아도 되고 연기를 마실 필요도 없게 되었다고 오히려 나를 칭찬하는데 지금 이게 그 뭐냐, 식기에 비유하면 냄비인 것이지?
미니 레플리카를 주문한 손님이 공방으로 오겠다기에 매우 분주하다. 유니바디 차체는 이제 방청처리만 남았고 서스펜션 프레임은 이제 좀 있으면 철물점에서 배달이 올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레플리카라고 쓰고 지적재산권을 쌔벼서 원본이 되는 자동차 대비 80%쯤 동일하게 만들어도 어찌저찌 굴러가는 짝퉁이라고 하는 녀석의 엔진을 겉으로 살펴본다. 변속기를 조립하기 이전의 엔진이다. 무조건 작은 차체에서 최대한의 공간을 뽑아낸 기적의 브리튼 경차의 짝퉁의 작업 진행도는 약 50%에 닿을락 말락이다. 그리고 이미 계약을 마쳐놓고 블루크루드 동요사건 때문에 은신한 나를 원망하며 계약을 취소한 건이 새로 받은 미니 레플리카보다 많았다. 남은 다섯 건마저도 취소당해서 인수받겠다고 공방에 직접 오겠다는 손님이 반가울 뿐. 손님은 그냥 자동차의 조립상태나 다른 것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색깔은 하늘색이 좋겠다는 얘기만 하다가 갔다. 그리고 나가면서 내 미니를 가리켜 자기가 주문한 것의 모양새가 저것이냐 하더라. 그렇다고 하자 조립에 신중을 다해달라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손님은 사라져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완성에 가까워지는 미니 레플리카의 시동을 걸어보기도 하고 조금 부족한 마감이다 싶은 곳에 브러시도 주고 자동차공업사에 배기가스와 등화가 법규에 맞는지 시험을 보내고 다섯 시간 뒤에 합격 성적표와 손님의 미니가 돌아왔다. 손님에게는 자동차가 완성되었다고 문자와 이메일, 서신을 보내고 찾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시운전 중에 충전소에 들러 블루페트롤 연료 탱크 가득 채워갖고 왔기에 타고 가다가 멎어버릴 위험은 없겠지 하고 카리프트에 올려 고무망치로 이곳저곳 두드려도 보고 새는 곳은 없나 다시 확인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귀여운 하늘색 미니를 보고는 너무 귀엽다고 얼마간 할부가 나올테니까 계좌번호를 부탁한다기에 회사의 구좌번호를 알려주고 이내 손님은 주문한 자동차를 타고 공방과 멀어졌다. 안전운전하라는 인사는 들었을까. 그렇게 공방을 다시 열고서 만든 첫 번째 자동차가 공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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