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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흩어지는 글을 모아서

돌아왔다

두번의 봄 2017. 3. 28. 18:17
어느 교외궤도의 아침이다. 원래 숲의 나무를 쉽게 나르기 위해 만든 폭이 굉장히 좁은 철로지만 지금은 그 숲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에게 시내버스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고마운 철로에 오늘도 전기기관차와 증기기관차가 구른다.

하지만 역시 요새는 사람들이 숲 주변의 마을을 떠나가는 중이라 이 교외궤도도 얼마 후면 없어질 수 있는 운명에 처했다. 얼마 남지않은 마을 사람들과 조그마한 화물과 편지들을 싣고서 보통의 전철보다도 작은 열차가 자신보다 네 배는 큰 열차 옆에 정차했다. 그렇게 더 큰 마을로, 도시로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그마한 교외궤도 열차가 역에서 통표를 바꾸고 방향을 바꿔 마을로 돌아가는 모습을, 나는 한참동안이나 교외궤도 열차가 서는 그 정류장에 서서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보았다.

그렇게 조금 걸렸을까, 나는 문득 교외궤도를 달리는 열차에 올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득 세상의 여러가지를 여기에서는 잊을 수 있을까 상상하며 숲 속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렇게 나는 여기로 온 목적을 이루려 숲 깊숙히 걸어서 적당한 나무에 올가미를 매었다. 그리고 조그만 나무상자를 땅바닥에 놓고 올라가 올가미에 목을 매어 상자를 찼다. 좀 멀리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교외궤도의 열차 안에서 아직 숲에 닿지 않은 그 지점에서. 물론 죽어가는 도중의 환상일지도. 하지만 역시 이렇게 실제같은 꿈이나 환상이 존재할까 싶었다. 시간이 되돌아온 것일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목을 매려고 갖고 온, 올가미가 든 나무상자가 내 품에 없었고 죽은 시점에서 내가 숲까지 타고 온 궤도열차는 전기동차였지만 지금 내가 탄 열차는 증기기관차에 끌려가는 객차였거든. 그리고 이윽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궤도열차와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나무상자와 올가미,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멎어있는' 어떤 자동인형을 보았다.

불길해져서 계속 숲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분명 내가 매달린 나무지만 나는 지금 살아있고 그 나무에 매달린 것은 사람의 시체가 아닌, 톱니바퀴와 탈자된 태엽이 어느정도 드러나보이는 자동인형이었다.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는걸까 조금 두려운 느낌으로 나는 마을에 열차가 닿는 순간, 정류장의 검표원에게 표를 던지듯이 건네고서 막 뛰었다. 무서웠다. 이상했다. 그리고 문득 보았다.

내 관절부에 구체관절을 보았다.

그냥 누군가가 나에게 착각을 심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당황했다. 이렇게 공황에 빠진 나는 기절하여 어떤 수줍고 겁이 많은 아이에게 오게 되었나. 무섭다고 말하며 괜찮아질거예요 말하는 옅은 유리빛 눈의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한 말이 '나랑 같다'는 말이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내 그 아이도 구체관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또 두려워졌다.

정신을 차린 척했다. 근처에 또 마을이 있냐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없다고 대답한다. 전철역으로 가는 교외궤도가 있지 않느냐 말했지만 그 아이는 한숨을 쉬며 여기는 작은 섬이고 궤도는 겨우 마을과 숲을 잇고 있으며 전철역은 없고 오직 궤도만 있다고 말했다. 맙소사.

그렇게 나의 꿈 속에 갇혀서 나는 이미 죽었고 여기는 사후세계구나 망상했다. 하지만 절대 사후세계는 아닌 것이 이 섬에 살고있는 모두는 구체관절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전부 외부와 제한적으로나마 통해있고 그런 가운데에서 나는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전기와 전화가 되고 그렇게 집으로 전화의 신호가 간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어째서 여기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나는 여기로 돌아온 것이다.

귀여운 구체관절인형의 모습을 한 마을 모두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모임을 열었고 여행은 즐거웠냐고 묻는다. 그렇게 모두가 상냥하게 대해주는 여기로 내가 진짜 돌아온 것이 맞나 싶은데 어쨌든 마을사람들이 또 얘기하길 그냥 얌전히 돌아왔으면 좋았을텐데 숲에서 목은 왜 맸냐고 여행 중에 어디 붙잡혀서 괴로웠냐고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그리고 찬찬히 내가 살던 세계의 이야기를 아는대로 전부 다 들려주었다. 일동 모두 나만 제외하고 경악했다.

전부 내가 지옥에 다녀온 것이 다름없고 어딘가 갇혀서 생활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일단 내가 원래 있던 세계라고 알고있던) 평범한 세계의 이야기를 거기는 어느 인외마경 수라도냐 하는 식으로 경악하는 마을사람들(그 누구도 빠짐없이 구체관절인형이라 이 섬 안에 한정해서 사람이라 부를 수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다)은 일단 나보고 나를 돌보는 아이의 집으로 가서 푹 쉬라고 하며 모임은 끝났다. 그렇게 옅은 유리빛 눈동자의 그 아이가 이제 돌아가자며 옅게 웃어보인다.

뭔가 깨질 듯이 행동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돌봐주는 옅은 유리빛 눈동자를 가진 아이의 이름은 '봄'이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래서 무심코 옷장을 열었는데 얇은 봄가을 옷 밖에 없어서 봄이에게 물으니 이 섬에는 봄날씨만 계속되니까 더 얇거나 두꺼운 옷이 필요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내게 그 아이가 건넨 옷은 진짜 인형옷같이 쓸데없이 귀여운 옷이었다. 그런데 얼굴을 붉히는 봄이의 반응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꽤 일상적인 옷이여서 피식 웃어버리는 나, 당황하는 봄이. 그럼 우선 목욕부터 하라며 뜨거운 물은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마치고 봄이가 준 옷으로 갈아입고 뽀송하면서도 촉촉하게 잠이 들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별이 예뻤고 내가 돌아온 세상, 그리고 나를 여기로 돌려보내준 마을의 궤도를 달리는 열차가 조금씩 나에게 좋은 꿈을 꾸라고 알려준다.

그 모든 것이 꿈인 줄로 알았지만 나는 꿈에서 깨어나서 아직 자고있는 봄이와 내 몸 관절부가 구체관절로 되어있고 봄이도 그렇다는 것과 영원히 봄날씨만 계속되는 섬의 쾌적한 바람과 내가 입고있는 마치 인형옷처럼 쓸데없이 귀여운 옷차림을 보니 꿈이 아니구나 실감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내가 원래 있어야 했던 상냥하고 따뜻한 세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