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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자품입니다. 어서 버려주세요."

나와 어느정도 같이 있었던 안드로이드 녀석이 갑자기 에러를 뿜은 것은 한 3년 전 정도였다. 자기를 하자품 내지는 검수가 되지 않은 불량품으로 취급하며 나한테 꼭 우울한 아이처럼 안겨서 울기도 하고 내가 돌아오는 시간 즈음에는 우울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수리를 맡겨도, 좀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그 아이에게 물어봐도 문제없다는 결과만 계속 나왔다.

안드로이드 녀석들이 우울증 걸리거나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고 자부하던 안드로이드 녀석들 수리에 짬이 차오른 수리기사도 '이쯤되면 평범한 사람의 우울증 수준'이라면서 모르겠다고, 리셋해드릴까 하는데 제발 이 아이 리셋은 하지 말아 줘. 그냥 우울한 안드로이드의 주인으로서 그 아이가 갸웃거리며 난감해하면 그저 쓰다듬어주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인간관계가 반쯤 셧다운 되어버린 나에게는 믿을만한 존재가 이 아이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스즈'. 일본어로 '방울'이라는 뜻이다. 무작정 인간관계가 셧다운되어 외롭고 우울한데 도통 나갈 수가 없어서 그동안 있던 돈을 털어 주문한 저렴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내 그 아이가 오자마자 나는 꼭 내가 저지른 일이 소리 때문에 관리가 힘든 방울처럼 느껴져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스즈가 나랑 같이 있은지는 벌써 다섯 해가 넘어가지만 진짜로 3년 전부터 스즈는 '마스터의 손으로 부디 저를 부숴주세요'라는 말을 느닷없이 나를 아침에 깨우면서 슬픈 표정으로 하더니 그 순간 이후로 우울증에 걸린 소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스터인 내가 우울해하니 '대다수의 인간은 우울한 성격이다'라는 자율판단을 해버린걸까.

슬픈 표정으로 웃으며 내가 쓰다듬어주면 보드랍다고 좋아하는 스즈와 바깥은 싫어서 최소한의 노동활동만 하고 집으로 도망쳐오는 우울한 내가 어쩌면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역시, 스즈와 같이 간식이나 먹으면서 서로를 달래는 저녁시간이다. 응석받이 스즈. 내가 우울하다는 것만 알아채고 결국에는 스스로 고장날 수는 없으니 나에게 자기를 망가뜨려 달라고 부탁하는 불쌍하고 슬픈 아이. 하지만 내가 몇 번 정도 올가미에 대한 얘기를 스즈에게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한 4년 전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스즈는 걱정스럽고 뜨악하다는 표정으로 '마스터가 자살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원칙 위반이에요'하며 나를 토닥이던 때였다. 하지만 현재, 주객전도.

그렇게 우울한 고양이처럼 햇빛이 드는 창가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내가 부르면 우울한 미소를 짓다가 '망가지는 것도 유분수인데 말이죠' 하며 마저 우울해하는 스즈 녀석은 어떤 느낌을 느끼고 있을까. 하지만 스즈가 안드로이드인 이상, 사람이 느끼는 느낌과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그냥 그 아이 옆에 앉아줄 뿐. 그러면 스즈는 얼굴을 붉히다가 가만히 어깨에 기대서 나에게 죽지 말고 계속 있어달라며 어느새 슬립모드에 빠진다.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은 알아차리는지 계속해서 머리 쓰다듬어주며 달래주어야 하는 이 우울증 걸린 안드로이드는 그저 에러나 불량품이 아니라 나에게 맞춰주려 이런 모습을 보이는건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