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자품입니다. 어서 버려주세요." 나와 어느정도 같이 있었던 안드로이드 녀석이 갑자기 에러를 뿜은 것은 한 3년 전 정도였다. 자기를 하자품 내지는 검수가 되지 않은 불량품으로 취급하며 나한테 꼭 우울한 아이처럼 안겨서 울기도 하고 내가 돌아오는 시간 즈음에는 우울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수리를 맡겨도, 좀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그 아이에게 물어봐도 문제없다는 결과만 계속 나왔다. 안드로이드 녀석들이 우울증 걸리거나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고 자부하던 안드로이드 녀석들 수리에 짬이 차오른 수리기사도 '이쯤되면 평범한 사람의 우울증 수준'이라면서 모르겠다고, 리셋해드릴까 하는데 제발 이 아이 리셋은 하지 말아 줘. 그냥 우울한 안드로이드의 주인으로서 그 아이가 갸웃..
누가 대화다운 대화의 형식을 제게 알려주었으면 해요. 저는 대화다운 대화를 못하고 있고 그게 뭔지도 몰라서 사람들한테 진짜 말하는 법을 모른다고 한소리 듣는데 도대체 대화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람보다는 인형에 가까운 저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도 사람된 이상, 외람되지만 알아야 해서 말이에요. 사회성 떨어진다고, 아는 것만 많고 생각만 많고 다른 것은 다 안됐다고 듣기는 더 이상 싫어. 비유를 들면 대부분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리고 어려운 이야기라면 테세우스의 배라던가 거짓말쟁이 크레타인같은 얘기를 말하나요? 그리고 평범한 일상은 무엇이고 관심사가 같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는거죠? 사회성이 떨어..
향기로운 차를 준비해 놨고 달콤한 과자도 준비했어요. 알아차리고 와주세요, 병든 심리의 가시덤불과 알 수 없는 명제의 숲 너머로. 숲 속, 답이 존재할 리 없는 딜레마를 헤치고서요. 여기, 내가 준비한 것들은 당신을 위한 것. 하지만 당신은 주머니칼로 나를 죽이려들고 나는 알아버리죠. 나는 있으면 안 돼. 남에게 폐만 끼치는 멍청이잖아. 그러면서 가시덤불이나 딜레마 명제의 숲을 얘기하면 나는 모를 수밖에 없어요. 나는 여기에서 줄곧 있었으니까요. 숲 속이나 숲을 가로질러 있는 곳은 모르니까 가르쳐달라고 순진하게 웃으면 목을 긋고 목을 긋고도 피가 흐르지 않아 몇 번이고 찌르고 그렇게 귀엽고 하얀 모습이 망가져버리면 그것이 매우 달콤한 악몽이겠죠. 후회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이미 망가져있어요. 애초에 망가져..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은 공포다. 그래서 그 공포를 무마하기 위해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며 관철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해서 해결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지는 것이나 아니면 관철의 과정에 격정이 올라오는 것이나 비슷하다면 둘 중에 하나만 하게 되었으면. 그리고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만큼이나 많은 판단을 요구하는 복잡한 체계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사람에게 실망하는 누군가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사람 대신에 인형을 좋아하기도 한다. 인형이 아니라 그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도 높다. 대다수는 마약에 손을 대거나 재미로 사람을 죽이거나 돈에 미쳐서 무슨 일이든 한다. 이렇듯 쾌락범으로 굴러떨어지는 부류보다야 인형에 매료..
반드시 5월에 들어올거라고 큰소리치던 언론과는 달리 출고지연으로 6월 중순에야 들어와서 운행을 시작한 경원여객의 2층버스이다. 평일에는 안산과 강남을 잇는 3102번에서, 공휴일에는 중앙역과 대부도를 잇는 300번에서 볼 수 있는 이 버스는 통근시간에 터져나가는 강남행 버스와 경치가 좋고 시청도 제대로 못 가니 안산에서 나간다고 협박하는 대부도를 위한 그런 2층버스일테다. 2층으로 쌓은 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고 2층에서 보는 시화방조제의 풍경이 어떨지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안산시에 2층버스가 도입된 것은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다. 정확한 2층버스 시간표는 안 나왔지만 여튼 두 대만 2층버스이니 그만큼이나 뜸하게 다니겠지 싶고 이 2층버스가 양재꽃시장과 양재시민의숲, 의왕톨게이트 정류장을 지나가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사라져버린 기억은. 이제 어느 망해가는 카페 한 자락에 앉아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쳐다볼 뿐. '그 때의 나는 참 순진해빠졌지요'라면서 다 비우지 못한 커피잔이나 보며 '꽤 비싼 커피일텐데' 하는 나는 이제 다 죽어가는 몸. 자, 무엇을 원하나요? 설마싶지만 좋으시다면 오늘 저녁으로 제 고기를 먹는 것은? 어차피 쓸모없어서 치이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히는 것도 나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무리. 나는 또 버스타고 집에 돌아갑니다. 가로등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통과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사라져버린 행복은.
답답함이란 무엇일까. 그저 꿈틀대지 못하여 힘들어하는 그런 것일까 생각해보자면 내가 아메바같다. 또한 이제 이 도시를 유명하게 해준 열정의 축제는 막을 내렸고 나는 그 축제의 첫 날, 그 개막식을 보며 뭉클했지만 나에게 그 정도의 열정이 있는가 묻는다면 'Ne'라고 대답하겠다. 에스페란토로 '아니오'라는 뜻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세이부 철도이다. 2005년에 사장이 증권 허위기재로 잡혀들어가서 상장폐지되어 2014년 지주회사가 상장함으로 재상장하기까지 굉장한 시도; 그래봤자 웃는 상의 세이부 30000계 전동차지만 여튼 도전을 했고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이라는 토코로자와로 향하는 "팔일째, 비가 그치기 전에" 타고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흔한 노란색 전동차가 구르는 외곽의 철도일 것이다. 나는 첫 ..
운전면허를 땄을 때요.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운전면허를 따기 몇 년 전에는 자전거 사고를 낸 적이 있어서 겁도 많이 났고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는 자동차 면허를 저만 무섭다고서 안 갖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장내기능이 강화될지 모른다는 소리에 저는 용기를 내버렸답니다! 그리고 필기와 장내기능은 단번에 붙었지요. 다만 문제는 도로주행이었어요. 무섭더라고요.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첫 도전 때는 계속 거친 쉼호흡을 쉬며 코스를 돌았어요. 불안해하는 것, 그게 감점요소일 줄은 모르고서 점수 미달로 첫 도전 탈락, 두번째는 황신호에 진행해서 신호위반 실격, 세번째도 점수 미달이었지요. 그래서 네번째 도전을 하는 날이 왔답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것이 제일 연습을 안 했던 코스가 걸렸던거죠. 두려움이 있었지만 ..
눈을 뜨면 나는 정원에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꿈이라는 것은 생각해봤자 건강해지지 않는 느낌이 나지만 여하튼 이곳은 꿈과도 같았다. 정원을 걸으며 상쾌한 향이 나는 박하와 진정하게 해주는 향의 라벤더, 특이한 향의 백리향이 바람에 흔들려서 향기로웠다. 저 너머에서 새하얀 아이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만나서 반가워. 오늘은 날씨가 좋네라고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상냥하게 대해준다. 섬에는 봄과 가을 밖에 찾아오지 않아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이 섬에 사는 사람은 나, 단 하나. 나머지는 숲 속의 순한 동물들과 착한 요정, 그리고 내 마음을 깃들인 새하얀 자동인형들. 그렇게 모두가 여기의 다정함에 조금씩 물들어가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만들어나갔다. 결국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서 조금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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