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아름답다. 다만 그것 뿐이라서 슬플 뿐이다. 오늘도 정원을 가꾸고 온실을 돌보고 숲을 산책하며 열매를 모으고 물가에서 마실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요정, 동물들과 함께 폭신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불을 지펴놓은 채로 내리는 바람에 철길을 따라 혼자서 내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붙잡아서 차고까지 몰고가며 철길 위로 놓인 전깃줄이 아직 팽팽한가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은 빛났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계속 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차고에 도착했을 즈음에 나는 피곤해져서 잠시 근처 풀밭에 누웠어. 그리고 예전 기억이 한데 뒤섞인 악몽을 꾸었다.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하유라는 섬나라로 갈 때, 나도 그 안에 있었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같이 살기 싫었던 나머지, 나만 통나무 배를 타고..
푸른 요정은 오늘도 우울해한다. 창가에 비치는 바다가 너무 예뻐. 바다는 푸르고 아름다워 하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서로를 인형이라고 생각하고서 몸짓을 지어주고 서로 귀여운 옷도 입혀주며 놀면 좋을까 하길래 인형을 다루듯이 그 아이를 움직여 나름대로 귀여운 포즈를 잡아주고 볼을 주물거렸더니 싫은 소리를 내며 저리 가라고 하는 푸른 요정의 칭얼거림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거지 생각을 하면서 그저 무료하게, 푸른 요정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갸웃거리며 나를 보길래 쓰다듬어 주었고 눈을 살포시 감으며 미소짓는 귀여운 모습을 봤는데 왠지 덧없었다. 그런 놀이에 어울려주는 것보다는 일단 바깥에 나가보는 것이 낫겠지. 옷자락을 잡으며 싫은 표정 짓는 푸른 요정을 뿌리치고 바깥으로 나왔나..
또 하루가 지나버렸다. 집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는 시끄럽고 비까지 내리며 오늘도 푸른 요정 녀석은 창가를 보며 비 오는 날이 맑아서 좋다고 노래한다. 그나저나 아직 잠이 반쯤 깬 상태로 소파에 누운 나는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멈춘다. 요새 심해진 불면과 불편이 잠들지 못하게 하는 마법으로 와서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폭신하고 촉촉하게 잠들 수 있고 좋은 꿈을 꾸게 해줄게' 하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차갑지만 보드라운 손이 내 이마에 올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소리가 우리 집 우울한데다 무료한 푸른 요정이지만 모르는 척해보자. 조금씩 편히 잠에 빠져들었다. 포근하게 들어간 꿈 속에서는 환하게 웃는 귀엽고 수줍은 아이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 ..
아아 오늘도 일자리는 못 찾았다. 이렇게 돌아다녀도 내 일은 어디에도 없음을 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사는 마을로 돌아간다. 차창 밖으로 보는 하유의 풍경은 사랑스럽구나. 하지만 나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로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니. 그렇게 겨우 일자리를 찾으러 달려온, 갈아타는 여기에서 나는 그냥 걸음을 멈췄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아직 오지 않았고 그저 벚꽃과 매화와 살구꽃이 함께 피는 서늘한 봄날이지만 엘리뇨의 기운이 물씬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들,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빵빵 소리를 내며 도착한 버스에 올라 집에 도착해도 그저 나라에게 빌린 이 집도 언젠가는 뺏기겠지 싶어서 심란해지는 하루하루에 정신이 나가도 좋지 않을까 하며 그저 시름시름 앓는 모습으로 바깥에 나간 느낌..
세계 표준시보다 열한 시간이 빠른 시계는 똑닥거렸고 일자리를 얻지 못한 누군가는 하유섬 한 가운데를 걸어다녔다. 전철 타고 쭉 가니 어느샌가 여기에 닿았고 여기서 해안가에서 근처의 집으로 걸어간다 한들, 나라한테 빌린 집. 살고 있는 동네가 바닷가랑 가까워서 언제나 막힐 때마다 바닷가로 가는 멍청한 니트는 남서구 한귀퉁이에 있는, 나라에서 빌려준 집에 살고 있다. 진짜로 나라가 조그마해서 주택을 배급한다고. 그런 입장에서 외람되지만 빨리 일을 해야하는 나의 처지는 한심하다 못해서 짜증난다. 이런 일상이 끝나기를 바라며 '적어도 사랑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매일매일 바라는 바보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오늘, 내가 타려던 게 몇 시에 온댔었나 하고 좀 더 일찍 일을 잡으러 나갔다면 탈 수 있었을..
이야기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그저 바다로 가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잘 안 되면 다시 하려고도 했는데 역시 실제적이지 못한 내 자신이 화가 되어 그 모든 것을 불사르고 폐허로 만들고 어쨌든 차분한 내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과분한 것들 많이 알아야 하는 쓸모없는 것들 나를 괴롭히는데 결국에는 과묵하고 유약한 인형인걸까 떠올리면 그게 정답인데 아닌 모순. 모순이라는 어떤 싹과 마을을 벗어나는 버스. 그리고 알력다툼. 또한 상자 속에 갇혀 부정당하는 마음씨 여린 인형. 아무리 상자에서 꺼내줘도 나에게 우울한 미소만 줄 뿐이야. 그 아이는 우울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미안하다 하는데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내 목에 낫이. 우울한 미소를 띈 유약한 인형이 나를 죽이려 해. 다시 한 번 보..
고민이 많으니까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별은 반짝이고 참 아름다운데 아무래도 나는 저 별 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아요. 그저 나는 한없이 가라앉아서 예쁘게 죽어버린다면 좋을텐데요. 하지만 그것도 잘 안 되니 정말 슬프네요. 오늘도 여전히 제 가슴 속 무브먼트는 째각여요. 하지만 왜 째각이는지 이유도 잃어버린 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장치가 너무 싫어서 빼버리려고 해도 그 뿐. 바다가 멋지고 여우는 폭신해요. 눈물을 흘리면서 보면 바다는 더욱 멋져서 나를 멎게 해달라고 나는 바다에 소리쳐요. 중얼거리지 못해 글을 쓰는데 중얼거리는 속도보다 타자를 치는 속도가 느리니 어쩌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저 죽고 싶어. 말로 쓰는 글도 별로 정확하지도 않고 인생은 힘들고 여러모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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