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붙잡힌 요정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다. 대부분 불행해져서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혹은 때를 봐서 도망치거나 하는 이야기들인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밤바람을 쐬며 그런 이야기 생각하니 우울해져. 옛날에 푸르고 여린 요정이 숲 속이나 어쩌면 도시 가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요정들은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상냥했지만 사람들이 그런 요정들을 꾀어내 자신들의 마을로 데려가면 요정들은 슬퍼하다 못해 울다 죽고 말거나 운 좋게 도망쳐도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우울해질 뿐.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바닷가로 향합니다. 오래간만이네요. 바닷소리는 아름다워서 마음을 씻겨주지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모두에게 다르지만요. 여기까지 걸어나와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위안이 되는 기분이에요. 해안가를 따라서 놓인 철길과 도로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지금 제가 있는 해안가의 바닷소리와 어우러져서 저를 어루만진답니다. 바닷가의 소년인형이라 해서 모두가 저를 알아봐주거나 하진 않지만 신기해하긴 해요.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인형 하나가 이따금씩 바다에 나와서 눈을 감고 바람을 쐬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가요. 저는 부끄러워서 그저 자리를 피할 뿐. 집은 바닷가를 따라 나있는 도로를 건너면 있는 아파트의 5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가 쉬고 잠드는 공간이 펼쳐지죠. 발..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것도 처음 와보는 숲에서. 숲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소리치면서 누굴 찾아도 아무도 없다. 산 속 동물들만이 무서워 도망친다. 그나마 말이 통할 요정들도 내가 무서운지 도망친다. 다 틀렸다 생각하고 눈 앞의 독버섯을 먹고 죽을 궁리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요정이 조용히 갖고 사라진다. 나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길을 찾지 못했다. 나를 구해준다면 누구라도 좋다고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이다. 메아리일까요? 아니오, 누구라도 그래요.
자동차 시동은 잘 걸리지 않아서 초크를 좀 더 열고 액셀을 밟으며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지요. 그래봤자 부다닥거리며 시동은 걸리지 않아요. 오늘도 그냥 걸어가야 겠네요. 어차피 여기는 여름도 사늘하니까요. 그렇게 옥수수와 콩을 심어둔 쪽으로 걸어가요. 천천히 걸어가면 물가가 나오고 양동이에 물도 긷고 내가 왜 자동차와 부족한 먹을거리 때문에 이 섬을 나갔다가 돌아와야 하는지 혼자 스스로에게 욕도 하면서요. 하지만 그래서 뭔가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숲을 벗어나 제일 먼저 마주치는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따먹어요. 달고 물기 많아. 자동차는 앞으로 나가지를 않아서 뭐가 문제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또 마을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나요. 아마도 부조다 뭐다해서 나에게 엄청난 돈을 뜯어내려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자동..
기상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철은 정시에 출발했고 그렇게 출근하면 내 자리에 누군가 뭔가를 확인해 달라고 쪽지를 놓지. 사흘을 쉬어서 모두의 눈치가 보이는데 모두들 출석카드나 찍읍시다 하면서 또 무의미한 나날이 또 지나가는 것인가 하며 나른한 하품을 한다. 지난 사흘 간의 즐거움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면 그저 일에나 집중하자 하면서 몸에 해로운 독한 커피를 마시고 진짜로 일에 집중한다. 길가의 자동차와 트램이 아직 덜 깬 나에게 이제 괜찮냐고 물어보는 성 싶고 준비해야 하는 여러가지 기획이나 샘플을 살펴본다. 그러다가도 쏟아지는 것이 졸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겨내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즐거움을 위해서만 일하는 누군가는 없겠지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그렇게 따분하면 자동차로 출근할까 생각하며 5부제에 걸..
천천히 좌회전을 한다. 직진해오던 차가 멈춰서 상향등을 한 번 반짝여줬으니. 공방제 자동차가 영 깡통같은 것은 참을 만하다. 어차피 자동차를 타던 전철을 타던 여기는 한산하고 편하다. 그렇게 좀 멀리 떨어진 과수원에 직접 과일을 사러 간다. 푹신푹신하게 까닥이는 공방제 자동차를 몰다보면 역시 이게 재미있는거지 하면서 단숨에 4단까지 단을 올리고 남동중앙 출구까지 내달린다. 북동쪽의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풍경은 서쪽과 동쪽이 서로 다르다. 서쪽이 비교적 번화했고 동쪽은 한가로운 어느 도시들의 교외와 같은 풍경을 보이고 있다. 소와 돼지를 기르고 풀과 나무를 가꾸는 고요한 정경인 것이다. 지금, 과일 직거래를 위해서 사과 농장으로 가고 있는 내 옆으로 ..
자동차는 털털거려요.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가스가 부족해서 그럴 거예요. 하는 수 없이 내려서 목적지인 산 위의 낮은 나무들이 많은 곳으로 걸어가요. 달고 새콤한 열매가 많아서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곳이에요. 불씨를 살리는데 가스는 요긴해요. 낙엽과 나무껍질, 먹으면서 생기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꽉 잠기는 통에 넣고 물에 재워놓으면 불이 붙는 가스가 생기는데 이 정도 꾀가 없으면 정원섬에서 혼자 사는 저는 불도 오래 못 피우고 쓸모없다며 가져가라던 자동차를 고쳐서 섬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만 그것 때문에 제가 주기적으로 섬 밖으로 나와서 열매를 팔아야 하지만요. 마을로 나가기는 싫지만 어쩌겠어요. 그리고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빨갛고 새콤한 열매는 마을에서 비싸게 사줘요. 산이 사늘하고 구름..
폭신하고 따뜻한 정원섬에는 귀여운 자동차와 조그만 철길, 따뜻한 유리온실과 항상 서늘한 날씨가 기분 좋은 숲과 맑은 물가가 있지요. 나가지 않아도 나는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자동차와 철길을 고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나가야 해요. 그것들을 고치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서 말예요. 자동차와 철길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죄다 비싸서 나는 내 섬에서 기른 풀과 열매를 팔지요. 하지만 내가 내 정원섬을 나와서 마을이 있는 섬으로 나와 내가 정성껏 기른 풀과 열매를 상인에게 팔면 가격을 후려쳐요. 그래서 다른 곳의 가격을 봐달라고 하면 인형 주제에 건방지다고 맞아요. 실망해서 섬으로 돌아오면 그냥 토끼가 보드랍고 여우가 복실복실해요. 그리고 이 정원섬은 수라도나 다름없다고 화를 내지만 그러다 이내 가라앉아..
전철은 병용궤도의 한 가운데에서 멈춘다. 춤추듯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켜고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잠에 드는 그런 일상, 식상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초고를 쓰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일상이다. 어차피 모두들 10시에 출근해서 17시면 전부 퇴근하니까 이게 일상일 뿐이지만. 출근은 역시 그렇듯이 버스 아니면 전철이다. 집 앞의 정류장에 버스가 먼저 오면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전철이 먼저 오면 병용궤도를 천천히 달리다가 중앙의 지하까지 급행으로 내달리는 전철을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식이다.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교정받은 기삿거리를 정리하고 틀린 사실은 없는지 확인하고 보도자료와 대조하고 우선 내가 쓰는 언어인 영어로 작성해 공용어부에 넘기면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
힘든 일이 있다면 그냥 풀밭에 누워 쉬면 되는 세상을 떠올린 적이 있었어요. 고양이도 있고 날씨도 서늘하고 아름다워서 여름이 없을 정도지요. 그렇게 결국 그런 장소를 찾았고 여기에서 아무도 없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어요.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물은 맑아서 목을 축이기에 좋지요. 그리고 이따금씩 자동차를 몰고 언덕을 올라가서 지는 해를 보기도 하고 슬플 때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귀를 막고 울기도 하죠. 이런 아름답고 귀여운 일상이 항상 계속 되기를 빌며 저는 오늘도 정원으로 꾸며진 곳에서 살고 있답니다. 마을로 나가보아요. 마을에는 철길도 있고 아이스크림과 푸딩을 파는 동글동글한 트럭, 달콤한 사탕가게와 농장이 있지요. 모두가 조심스럽고 상냥해서 남을 잘 상처주려고 하지 않아요. 여기에 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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