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 42호선. 이 국도가 어디로 이어지는 지는 얼마나 중요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좀 난감하다. 변속기의 플러스 마이너스를 딸각이며 실상으로 보자면 액추에이터가 대신 해주는 변속을 즐기는 꼴은 마치 내가 운전 조무사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309번 턴파이크로 들어간다. 어디쯤에서 운전대를 꺾어야 하는지는 도로의 모양이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청계산 자락의 어느 풍경을 지나 잠시 배가 고파져서 의왕톨게이트에 차를 세운다. 직각주차에 익숙하지 않기에 미안하지만 남의 차를 긁는 동시에 내 차도 긁었겠지. 그렇게 편의점으로 들어가 킷캣 하나, 민트 카페라떼 하나 사서 좀 마시고 있다가 자기 차가 긁혔다고 짜증내며 그대로 서울 방면으로 차를 몰고 가는 얼간이 새끼가 떠났고 나는 내가 타..
'엄청 미인형이고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이고 말수 적고 컬러링이 차가운 색으로 되어 있으면 사실 그 정체는 고성능 안드로이드다'라고 하는 암묵의 룰은 당최 왜 그런건가. 그것은 하이테크를 의미하는 청록색이 어두운 계열이고 인공지능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상황에 따른 감정을 학습하기 전까지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고 안드로이드는 따지자면 자동인형이니 원하는 미인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 아닐까나. 그렇다면 왜 안드로이드 캐릭터는 남성형보다 여성형이 더 많지? 안드로이드 캐릭터를 보면 인간을 보조하는 기계인형에 충실한 나머지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천연계 유형이 있고 인간의 모습을 했지만 본질은 기계인형인 무감정계 유형이 있는데 왠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서로 충돌할 듯해. "무감정계: 당신에게 논리회로란..
해야, 져라. 뜨겁다.
그런 와중에 나는 또 뭐하고 있는걸까. 밤 사이에 갑자기 트램이 다니는 그 부분이 선로 깔린 복공판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결국에는 도로파의 승리로구먼'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공사안내판에는 '해안마을 지하배관 점검 및 궤도 노반 고르기 공사 중; 남서선 노면전차는 그대로 이용 가능함'이라고 적혀있는데 과연 그것을 증명하듯이 바로 전차가 왔다. 앞으로 전차가 없어지겠구나 하면서 오늘도 망해버린 그 가게로 향했다. 탈세자 동결자산이 되어버린 가게 때문에 오늘도 일 못하는 신세가 된 나는 뭐가 되는걸까. 북동쪽으로 향하는 길. 상록숲이나 북동카페거리로 가실 분은 열차를 갈아타라고 알리는 열차는 이제 목서통역에 섰다. 그리고 상록숲을 가로지르는 전차를 기다리고 그렇게 북동카페거리행 전차를 끝까지 가서 네..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았지요. 대전 가는 급행 아닌 급행열차 객차 안에서 나는 당최 무슨 생각으로 지루히 앉아 있었는지. 신탄진철교를 넘어가면 군급 동네에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담배공장, 그리고 고속철도와의 합류지점 후, 대전에 도착합니다. 모두들 대전은 그냥 볼 것 없는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좀 다른데요. 참 푸르러서 좋습니다. 시내버스가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만요. 적당히 비싼 푯값에 적당히 먼 곳. 나는 그렇게 항상 들르는 으능정이와 그 안의 성심당과 정부대전청사와 그 건너편의 한밭수목원과 그 옛날에는 엑스포 회장으로 들어가는 다리로 향하며 가만히 갑천을 바라봅니다. 가만히… 갑천을… 노려봅니다. 폐허가 된 한빛탑 주변에서 눈을 돌려도 국립중앙과학관 쪽으로는 가지 않을겁니다. 볼 것이 없으니까..
섬은 아름답다. 다만 그것 뿐이라서 슬플 뿐이다. 오늘도 정원을 가꾸고 온실을 돌보고 숲을 산책하며 열매를 모으고 물가에서 마실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요정, 동물들과 함께 폭신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불을 지펴놓은 채로 내리는 바람에 철길을 따라 혼자서 내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붙잡아서 차고까지 몰고가며 철길 위로 놓인 전깃줄이 아직 팽팽한가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섬은 빛났다. 다만 그것 뿐이었다. 계속 그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차고에 도착했을 즈음에 나는 피곤해져서 잠시 근처 풀밭에 누웠어. 그리고 예전 기억이 한데 뒤섞인 악몽을 꾸었다.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사람들이 하유라는 섬나라로 갈 때, 나도 그 안에 있었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같이 살기 싫었던 나머지, 나만 통나무 배를 타고..
귀여운 자동인형 소년. 온실 속에 살아요. 세상을 잘 몰라요. 세상이 무서워요. 지쳐서 쓰러지면 여우가 폭신해. 목 마를 때면 샘이 눈 앞에. 우울하지만 반짝이는 세상 속 왕자님같은 인형은 어느새 세상 밖으로 끄집혀졌어요. 보통의 못생긴 아이로 현실을 살면 이렇게 형편없어지던가요. 조금 더 걸어가면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현실 속에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어떤 온실 속 귀여운 자동인형 소년이 있었어요. 죽어서 다시 자신의 온실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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