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숨어살듯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숨어살듯이 살지 말자고 하면 겁부터 난다. 여기 사람들은 우선 위로를 건네고 꽃이나 편지를 선물하는 것이 거의 국민성 수준으로 붙어있지만 그것도 서로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무작정 공영주차장에서 내 차를 끌고 나가본다. 겨우 주유소에서 기름만 채우고 다시 세워놓을 자동차라지만 가끔씩 이렇게 기름 채우러 몰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미 채워놓은 기름이 오래돼서 시동이 잘 안 걸리건 말건 나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누굴 만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주 외출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이다. 어차피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장소를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하유는 작다. 가까운 주유소에 도착해서 휘발유 스탠드 앞..
보글거린다. 일단은 그렇게 표현하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서 찾아온 공원은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방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상태를 가만히 보다가 이러다간 죽어버릴 것 같다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가만히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일단 나를 살피고 괜찮냐는 말을 넌지시 던지고 간다. 아름답구나. 시험정원을 돌아다니다가 묘목을 파는 누군가와 마주쳐서 심을 마당도 없는데 무화과나무 묘목을 사고 다시 길을 건너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그저 답답한 기분에 강가까지 뛰어가고 지쳐서 주저앉아 버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전부 강물에 떠내려가서 주울 수도 없이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출발시키려면 우선 클러치를 밟고 1단 넣고 클러치를 살살 놓아주다가 입질이 오면서 탁 걸리는 지점에 다다르면 그대로 그 상태를 유지해줍니다. 경유차의 경우에는 그대로 클러치를 놓아주어도 무방하나 휘발유차의 경우에는 액셀을 밟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반클러치는 그냥 입질이 오면서 탁 걸리는 느낌이 오는 지점까지 클러치를 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클러치만으로 출발이 가능할지는 엔진의 저속토크와 기어비가 좌우하므로 웬만하면 반클러치를 잡았다면 액셀을 밟아 충분한 힘을 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반클러치를 먼저 하는 것이 꺼려진다면 먼저 액셀을 밟고 반클러치를 잡으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액셀과 반클러치를 적절히 떼고 밟을 수 있도록 합시다.
스튜를 해놓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적어도 오늘의 약속이 그랬다. 하지만 오지를 않는다. 어째서지 하면서 계속 기다릴까 하면 스튜가 끓어 넘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중요한 약속은 아니지만 이렇게 스튜까지 준비할 만큼이나 엄청 반가운 누군가라서 지금 나는 이렇게 많은 수고와 기다림으로 계속 애를 태우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집 앞의 도로에는 자동차와 버스, 트램이 한 길가를 달리고 집 안의 불가에서는 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그냥 어떻게든 기다리는 누군가가 빨리 나에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라 더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찾아올 일이 없었기에 더더욱 오늘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누군가가..
트램이 가질 않는다. 바로 앞의 신호가 빨간색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고 트램이 도로교통이고 철로 위를 달리는 버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남서해안의 주택단지를 지나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트램이 가질 않으면 자동차들이 트램 뒤에 붙는다는 것이지만 여기를 지나지 않으면 고속도로로 나가기 힘들다. 물론 시험정원 정도를 구경하면서 조금 늦게 가면 되겠지만 한눈 파는 셈인데다 자동차를 몰면 트램이 신호를 기다리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있어야 하겠고. 남북고속도로는 소통원활이다. 소통원활한 가운데서 상록숲 방향으로 나가는 마지막 출구로 나가 여울오름으로 가려고 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용천과 숲 속의 수줍은 사람들이 참 곱지만 일단 자동차의 연료 눈금이 E를 가리킬 때까지 좀 버텨줬으면 좋겠다. 일..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나가고 있다. 이딴 크리스마스는 빨리 지나갔으면 해서 동쪽의 와이너리에 와인을 사러간다. 일단은 원하는 맛을 정해놓고 전철을 타고 가다가 한 번 갈아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서 와인 두 병 정도를 사고는 집에 돌아가서 퍼마시는게 목적이다. 전철이 연착이다. 그리고 버스도 그랬지만 전철도 성탄빛으로 반짝였다. 기분이 퍽 상하고 갈아타는 역의 환승통로도 성탄빛으로 빛나고 갈아탄 열차도 성탄빛, 지하에서 전철이 나오자마자 보인 것도 성탄 트리다. 기분이 더 나빠져서 볼을 부풀리고 말 없이 혼자 삐치고 내릴 역을 놓칠 뻔한다. 도착한 와이너리. 드라이는 싫다고 했는데 포도 농사가 망해서 스위트는 없다는 통에 싸울 뻔했다. 어쩔 수 없이 드라이한 것으로 두 병을 안아들고 또 다시 집으로 향한다..
조금은 캄캄한 방 안에 꽤 귀염성 있는 구체관절인형 하나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모두들 귀엽다고 칭찬할 만큼이나 귀여운 아이였다. 하지만 왜 이 방에 홀로 있을까 해서 괜히 불쌍한 마음에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천천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누군가를 알아챘는지 움직이던 아이는 이내 몸의 텐션이 끊어져 산산히 분해되고 말았다. 인형가게에서 겨우 그 아이를 다시 이루어냈을 때, 인형가게에서 텐션을 맡고 있는 누군가가 참 귀엽고 실제 사람 크기라 무섭기도 하다면서 잘 다루라고 말해주는 가운데, 아이가 깨어났다. 흔한 일이라고, 오래된 인형이나 우울한 주인을 둔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인형옷을 선물로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봄이는 내일 자살..
하유중앙행 전철이 지금 막 궤도 구간을 벗어났다. 철도에 올라 속도를 높이는 전철이 어디로 가는지는 정해져 있으니 내가 내릴 곳만 정하면 되겠지만 도로 위의 자동차와 같이 달리던 전철이 따로 마련된 철길 위로 올라가자마자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전철 안에는 출근하는 무리와 목적지를 갖고 전철에 오른 무리, 그리고 정처 없이 그저 전철에 탄 내가 있다. 전철 안 승객 중에서 나만 목적지 없이 공허함에 전철에 올랐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뭣같아서 내릴 곳을 찾아 노선도를 보았지만 역시 내가 내릴 곳은 거기에 없는 것 같아 다시 자리에 앉는다. 무엇을 위해 전철에 올랐는지는 모른다. 그게 전부일 뿐, 뭔가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전철은 종착역인 하유중앙역에 닿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가 안 된다. 세상이 무엇이었나. 단순하지 않았었나. 이제는 이해조차 못하겠다. 자, 보아라. 이게 내가 원하던 바냐? 아니다. 그러면 뭘 원하는거냐? 이러는 가운데에서 내가 뭘 또 외치면 그것을 트집잡으러 득달같이 몰려올테지. 진실은 그래서야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바는 여기 없다. 진실로 바라는 바는 내가 나로 되는 것. 밖에서 바라는 바는 내가 남으로 되는 것. 마치 외계인 손 증후군처럼 내가 안팎이 따로놀고 심지어는 서로 갈등하라는 것인가. 이해를 바라려면 그 이해의 예시를 주렴은.
일상이 호러다. 뭐만 하면 죽음이 기다린다. 옷장을 열자 기괴한 생물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싸늘하고 축축한 날씨다. 몸의 상태는 건강하지 못하다. 안심하고 싶지만 안심하면 죽는다. 일을 하면 실수한다. 실수가 저주로 변한다. 저주로 주변에서 쓰러지는 소리 들린다. 주변의 쓰러진 이는 악령이 붙는다. 쓰러진 이가 일어나 모두를 해친다. 장소를 뜨면 안 된다. 그래서 전부 당하는 꼴을 보고 만다. 나는 더더욱 장소를 뜨면 안 된다. 내가 장소를 뜨면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장소를 떠난다. 징계를 받는다. 그리고 다시 장소로 떠넘겨진다. 나까지 해쳐진다. 해쳐진 모두가 무사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이 유지될 리가 없다. 나는 정신을 놓고 그저 닥치고 있는다. 일상이 호러라서 사회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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