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대로 행동하세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망쳤다. 그러고나서 모든 것이 절연되었다. 이건 전철이 지나가면 전등이 절반이나 꺼지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끊겼다는 얘기다. 모든 것이 그 때부터 끊어졌다. 그렇게 끊어진 관계를 이어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매정하게 택시 뒷문이 닫히고 출발하고 만 그 시점에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돈 없어서 전철이나 타고 버스나 타고 다니는 내가 싫은 것이겠지. 착각이었다.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곱씹음이 멎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옥죄는 스트레스가 되어 더 나를 괴롭히고 하고 싶은 일도 나를 과로하게 하는 경우를 낳았다. 그래서 뭐가 어땠느냐. 집 밖을 나서며 인사하는 인형 한 놈에게 욕을 했고 전철 ..
어쩔 수 없이 심야버스를 타게 될 일이 생겼다. 이미 전철의 단전시간이 지났고 도시는 좀 있으면 일상을 시작하는 모두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에 놓인 선로와 고속도로를 따라서 심야 순환을 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전철이 운행을 끝냈고 길거리의 자동차도 줄어들었고 이제 밤잠이 없는 모두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심야 급행버스 외에는 다니지 않는 그런 시간이라 모두들 버스 안에 카드를 찍거나 요금을 내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하유섬에 밤이 찾아오면 장난 치는 요정도 있고 상록숲에서 절망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빨리 나가고 싶다. 심야버스가 출발한다. 상록숲을 벗어나 남북간선로로 들어가 속력을 내는 남서행 버스는 중앙도 지나쳐 바로 남서중앙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남..
소설 속 배경에 주유소 하나 만드려면 기본적으로 전기를 엄청 쓸테니 발전소랑 주유소에 보낼 기름과 가스를 만들기 위한 바이오가스 공정과 물의 전기분해 공정, TPOX 공정과 FT 공정, 원유 증류공정과 메타포밍 공정이 전부 필요하겠구나. 여기에서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공정이 바이오가스 공정(유기물을 썩혀서 메탄 만들기는 얼마나 썩어주느냐에 달림)과 TPOX 공정(메탄과 산소를 고온에서 태워 일산화탄소를 만들기에 코크도 생기고 산소도 따로 필요하고 필요한 열량도 오짐)이려나. 물의 전기분해 공정도 엄청 효율이 낮고 말이야. 전기 발전 → 물의 전기분해 → 수소 바이오가스 포집 → 가스 업그레이드 공정 → 바이오메탄 전기 발전 → (바이오가스 포집 → 가스 업그레이드 공정) → 바이오메탄 → (물의 전기분해..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숨어살듯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숨어살듯이 살지 말자고 하면 겁부터 난다. 여기 사람들은 우선 위로를 건네고 꽃이나 편지를 선물하는 것이 거의 국민성 수준으로 붙어있지만 그것도 서로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무작정 공영주차장에서 내 차를 끌고 나가본다. 겨우 주유소에서 기름만 채우고 다시 세워놓을 자동차라지만 가끔씩 이렇게 기름 채우러 몰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미 채워놓은 기름이 오래돼서 시동이 잘 안 걸리건 말건 나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누굴 만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주 외출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이다. 어차피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장소를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하유는 작다. 가까운 주유소에 도착해서 휘발유 스탠드 앞..
보글거린다. 일단은 그렇게 표현하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서 찾아온 공원은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방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상태를 가만히 보다가 이러다간 죽어버릴 것 같다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가만히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일단 나를 살피고 괜찮냐는 말을 넌지시 던지고 간다. 아름답구나. 시험정원을 돌아다니다가 묘목을 파는 누군가와 마주쳐서 심을 마당도 없는데 무화과나무 묘목을 사고 다시 길을 건너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그저 답답한 기분에 강가까지 뛰어가고 지쳐서 주저앉아 버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전부 강물에 떠내려가서 주울 수도 없이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출발시키려면 우선 클러치를 밟고 1단 넣고 클러치를 살살 놓아주다가 입질이 오면서 탁 걸리는 지점에 다다르면 그대로 그 상태를 유지해줍니다. 경유차의 경우에는 그대로 클러치를 놓아주어도 무방하나 휘발유차의 경우에는 액셀을 밟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반클러치는 그냥 입질이 오면서 탁 걸리는 느낌이 오는 지점까지 클러치를 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클러치만으로 출발이 가능할지는 엔진의 저속토크와 기어비가 좌우하므로 웬만하면 반클러치를 잡았다면 액셀을 밟아 충분한 힘을 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반클러치를 먼저 하는 것이 꺼려진다면 먼저 액셀을 밟고 반클러치를 잡으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액셀과 반클러치를 적절히 떼고 밟을 수 있도록 합시다.
스튜를 해놓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적어도 오늘의 약속이 그랬다. 하지만 오지를 않는다. 어째서지 하면서 계속 기다릴까 하면 스튜가 끓어 넘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중요한 약속은 아니지만 이렇게 스튜까지 준비할 만큼이나 엄청 반가운 누군가라서 지금 나는 이렇게 많은 수고와 기다림으로 계속 애를 태우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집 앞의 도로에는 자동차와 버스, 트램이 한 길가를 달리고 집 안의 불가에서는 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그냥 어떻게든 기다리는 누군가가 빨리 나에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라 더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찾아올 일이 없었기에 더더욱 오늘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누군가가..
또 한 대가 들어온다. 하유는 철도 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또한 내각에서도 장려하는 바이지만 여느 나라와 같이 자동차가 없지는 않다. 그것도 블루크루드 도입 이후로 더 늘었다. 때문에 고장나는 차도 많고 대부분은 그냥 휘발유차에 에탄올을 넣었거나 경유차에 휘발유 넣었거나 하는 경우로 차라리 누르시지요 수준의 고장이다. 하유에서 자동차 전체를 오버홀하려면 공방에 보내는 수밖에 없고 그러면 보증수리 깨져서 눌러버리라는 차주가 많기 때문이다. 하유에서 자동차를 몬다는 것 자체가 아주 가혹한 일이다. 하유국 내각이 합성석유 만들겠다고 협약 맺고 장비를 들여오고 주유소를 몇 군데 만들고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로 쓰는 자동차에 대한 수입허가를 내린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하유 사람들이 정원에 산다는 자..
전철이 이제 숲 속으로 들어가요. 하늘하늘한 인형옷이 마음에 들지만 얼룩이 지면 이 예쁜 옷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어쨌든 숲은 언제나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무서워요. 거리에는 낮은 건물들과 즐거운 사람들과 슬픈 표정의 사람들이 서로 엇갈려가고 저 중에서 누군가는 오늘 숲에서 목을 맬 수도 있지요. 참 슬픈 일이야.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와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턱을 괴고 무료해하면 여기가 참 조용하고 쉴 만하구나 느끼지만 그 뿐이에요. 제 집은 여기가 아니고 하유섬 사람들은 서로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소심하고 수줍어서 서로 친구가 되는 것도 꺼리니까요. 커피가 쓰네요. 달콤한 디저트도 시켜놨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요. 숲 속을 걷습니다. 언제는 숲 속에서 목..
이야기는 끝나버렸고 다시는 계속되지 않아 위에 쌓이고 먼지가 앉아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지쳐 죽어간 주변의 이야기의 마법들은 당최 여유를 잡아먹고 세상을 각박하게 만들고 서로 싸우고 시끄럽게 만들었다. 보아라 악마여, 이제 네 이야기를 할 차례다. 하지만 악마마저도 끝난 이야기에 갇혔고 끝난 이야기는 현대사회를 각박하게 한다. 각박함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끝장나서 이야기가 안 된다. 웃기지 않느냐, 이야기가 하나 끝장나서 세계멸망. 더 이상 뭔 이야기도 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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