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인형소년은 세상이 궁금했어요. 바깥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보려고 했죠. 하지만 바깥에는 온갖 괴물들이 돌아다니는 무시무시한 곳. 고작 자동인형인 소년은 겁을 먹고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갔지요. 일단 그 아이는 자신의 온실에서 온갖 포근함을 다 느끼고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인형소년에게 온실은 너무도 작았어요. 그래서 인형소년은 괴물에게 말했죠. 자기를 먹으려면 먹으라고요. 괴물들은 소년을 먹지 않고 갖고 놀다가 결국에는 산산조각을 냈습니다. 자동인형인 소년은 조각나도 다시 고치면 되는 편리한 존재. 어떤 상냥한 소녀가 기를 쓰고 소년을 다시 고칩니다. 그리고 소녀의 오빠도 소년을 고치는데 힘씁니다. 마침내 온실에서 나온 인형소년은 무사히 고쳐집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고쳐..
물가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 자리에 있는 물가는 저기 숲 속에 솟아있는 봉우리 끝에 있는 용천에서 흘러나온다고 하지. 그리고 나는 고작 컵 하나를 들고 그 용천에 해당하는 여울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다들 컵 하나를 들고서 그저 여울오름으로 올라가는 나를 보고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리고 몇몇은 하유 사람들의 특기인 안색 살피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딱히 나는 도움받을 일이 없어. 그저 컵 하나 들고 여울오름에 오른다! 그거 하나다! 여기로 여가를 즐기러 오는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도 나는 꿋꿋이 정상의 여울오름을 향해 걸을 뿐이다. 그게 뭐 어때서 별스럽게 보는거지? 그런데 하나만 다른 점을 찾아보자면 나는 컵 하나를 들고 자동차도 1단 기어로 힘겹게 올라가고..
언덕을 달려나온다. 내려오면서 기어를 바꾸고 다 내려오면 또 기어를 바꾼다. 공방제 자동차가 재미있고 하유국 산업 중에서 꽃과 나무하고 제일 거리가 먼 산업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 와중에도 이걸 또 수출하고 그러다니. 그래, 이게 사는거지. 차고에 차를 세워둔다. 자동차는 즐기는 목적이지 실용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비싸고 골치 아프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출근할 준비와 전철 시간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전철을 타고 중앙의 일자리로 출근한다. 서류는 챙겼고 오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체크하며 회사에 출근체크를 찍고 바로 만나야 할 첫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걱정하는 전화를 거니 차가 밀린다나. 자동차 회사 미팅인데 차가 밀려..
급행 시간에 댔다. 열차에 올라 도로 위를 같이 달리던 구간이 끝나면 내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시간은 많다. 하지만 오늘은 급행을 타고 출근한다. 열차는 정시 도착했다. 그렇게 북서쪽의 직장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소규모 중심지에서 부도심의 풍경을 지나면 경계선 녹지 근방에서 지하로 들어가 시내의 역 한 곳에 정차하고 이 열차는 급행이라 앞으로 두세 역에만 정차한다고 네 개의 공용어로 알리며 문을 닫고 출발한다. 오늘의 신문을 읽으며 열차가 내달리는 양 옆으로 지나가는 중앙의 풍경과 한 번 더 지하로 들어간 뒤에 나오면 나오는 온통 나무와 푸르름이 가득한 곳을 빗겨가는 차창, 그리고 다음 역은 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안녕하시오. 그렇게 도착하면 반겨주는 이는 청소부 뿐이다. 일찍 오셨다며 그렇게까지 일..
사늘한 여름과 하얀 겨울 날씨가 전형적이라 히터는 필요하지만 에어컨은 필요 없는, 철도와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동차 없이도 살 만하지만 자동차는 있어야 하는 1,210.5 제곱킬로미터의 작고 이상한 섬나라. 내가 사람들을 통솔하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하유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는 룰을 들은체 만체하고 여울오름 물에 동전을 던지다 걸려서 추방당하거나 상록숲의 나무를 함부로 꺾어서 벌금을 물거나 상냥한 가이드가 사실은 자동인형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기절하거나 혹은 함부로 대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아주 난장판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사표를 냈다. 외국인 문제 때문이냐고 하면 고개 끄덕일 수밖에. 사표는 수리됐다며 수고했다고 나가보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도시의 풍경을 본다. 여느 곳이..
아아 평화로워서 좀 쑤시다. 하지만 달리 객기를 부릴 이유도 없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그저 퇴근하고 만원 버스에 끼어서 서늘한 여름 속의 열대를 즐기며 매화단지의 셋방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하유국에서는 거주지 대여를 나라에서 해준다는 것을 모르고 개인에게 방을 빌려서 사글세 내는 것도 빠듯하다. 아름다운 정원국가는 좆까라 그래. 그것도 돈 많아야 자가용을 굴리며 여기저기 다니며 느끼는거지 혈혈단신에 에스페란토를 쓰는 이민자 새끼를 반기는 곳이 여기 외에 없으니까 참는거다. 오늘도 주문을 받으면서 내가 이상한 말로 대답한다고 영어로 말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는지 모르는데 에스페란토가 버젓이 표지판에 적혀있고 학교에서도 배운다지만 역시 사람들 듣기에는 이상하구나 하면서도 내 모어니까 다른 말을 배우기 ..
여기 꽤 괜찮다. 그렇게 몇 년을 살 정도면 어느 나라보다도 교통수단은 엄청 좋다 못해 과다공급 되고 있다는 뜻이지만 여긴 정말 대단하다. 버스도 철도도 트램도 대단하고 자가용을 갖고 다니는 것도 다른 나라들보다 쾌적하다. 다만 자가용 유지비가 비싼 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오늘도 내 차에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남서구는 전철을 타는 선택지가 탁월하지만 트램이 의외로 적절하게 움직여줘서 오히려 사고율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지하로 묻어달라는 민원도 많이 들어오지만 마을사무소와 구청이 씹어줘서 다행이야. 트램 노선을 중심으로 버스가 뻗어나간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나들목을 올라가 경계선 녹지를 지난다. 그렇게 중앙으로 들어서면 일단 나의 목적지이자 일터인 자동차 매장..
조그만 철길을 따라서 가는 화차의 안에는 사탕무가 한 가득 찼고 그렇게 오늘 일도 마무리되었다. 내 집은 여기에서 전철로 좀 더 가야 있는 상록숲 안의 오두막. 그래서 막 도착한 여기에서 친구 삼고 있는 토끼와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받아온 일당과 설탕 한 포대를 다락에 밀어 넣는다. 주워놓은 나뭇가지로 난로도 켜고 이제 저녁을 요리할 시간. 아아, 피곤하다. 사탕무 밭에서 잘 여문 것을 골라서 뽑느라고 여기저기가 더 마모되는 기분이 든다. 인형이라고 해서 덜 피곤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요정과 사람의 가까운 이웃 수준으로 지내다보니 기계장치로 인해 벌어지는 서로의 체력차이를 제외하면 별 차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더 피곤해서 물을 긷으러 가는 것을 미뤘다. 그런 불편함도 상록에서 사는 즐거움이니까. 다음 날..
정원과도 같지만 애매하다. 여기에 한시도 있기 싫다. 빨리 비자 기간을 줄여주고 본국의 의사를 불러 줘. 여기는 역시 삶을 영위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야. 다들 나를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기에 나를 보낸 새끼, 귀국하면 조각을 치겠어. 내가 여기로 발령난 것이 어언 3개월 전이다. 아마도 원예산업이 발달한 곳이니 마음도 가라앉힐 겸해서 정원에 갔다오라는 말이 여기로 귀양가라는 말일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또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비행기로 다섯 시간을 날아서 하유라는 외딴 나라에 도착하고는 처음 들른 카페에서 종업원들이 나는 컨셉을 잡고 움직이는지 알았고 전철을 타고 북동쪽의 사무실로 향하는 와중에 플랫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하얀 소년이 내 상사라는 말에 또 놀랐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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