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경적을 울린다. 여름에도 웬만해서는 23도까지만 기온이 올라가는 외따르고 작은 섬나라 하유에도 여름 한낮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폭염이 왔다. 나는 경적을 울린 이유만큼 왼쪽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중앙선 넘어 유턴한다. 꽤나 쉬운 작업이지만 폭염이 잡아먹는 마음 속 여유가 나를 점점 건조한 사막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럴 이유가 단 하나, 폭염으로 인해 돌아버릴 것 같은 지금 상황과 공방제 자동차에는 에어컨이 안 달려 나온다는 것이 그러하다. 유턴을 끝내니 전부 경적을 울리며 내 뒷쪽의 흐름도 유턴하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게 나는 중앙에서 남서로 가려던 중에 상록으로 유턴했다. 적어도 숲 속은 시원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차량운행제한 표지와 여기서부터 상록구라고..
일단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 치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여기, 이 미여울 강가를 계속 따라오다보니 나는 지금 상록숲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정말로 어찌된 영문인지 지치지도 않고 제 발로 여기까지 걸어오다니 왠지 상록숲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인 숲 속의 요정 때문인가 싶어서 이 동네를 통과해가는 택시나 트램을 찾았다. 그런데 택시는 잡히지를 않고 트램은 한 시간 간격으로 북동쪽으로 향하는 것 뿐이니 이제 내가 남서쪽으로 돌아가기는 틀렸다는 생각만 팍 드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이제 필사적으로 이 숲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여기도 하유섬이다. 헤매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
몽환적이에요. 자동차를 몰다가 잘못 들어온 숲 속은 고요하고 몽환적이었습니다. 나는 차를 세우고 숲 속을 거닐다 다시 자동차로 돌아가 시동을 켜고 1단까지만 넣고서 천천히 숲을 돌아보지요. 모두들 천천히 가는 자동차를 신기하게 여기지만 나는 어쨌든 길을 잃은 셈이에요. 숲은 아름답지만, 우선 가야 할 목적지가 있으니까요. 그런게 여기 대단해요. 구청도 따로 있고 사람들이 나에게 어디로 가야 북서인지도 가르쳐주네요? 즉, 저는 졸음운전으로 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죠. 공장에서 바로 나온 당밀 한 통을 사려고 자동차를 타고 왔는데 숲길로 잘못 들어와서는 길을 물어물어 북서로 가는 그거 말이에요.
이상하지. 나는 분명히 시간표를 지켜서 승강장에 나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열차가 문 닫고 떠난거 있지? 그래서 오늘은 늦을 것 같다고 연락하니 자기도 길이 막히거나 잘못 튀어나온 자동차를 박아서 그럴거라고 생각하니까 천천히 오래. 아니, 열차를 놓쳤다고 트램이 자동차를 박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다음 열차는 엄청 기다려야 있는 모양이고 나는 그렇게 최소 개찰시간 네 시간 안에는 내가 가는 방향의 전철이 오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그렇게 내가 타야 할 전철은 정말 늦게도 40분 뒤에 도착했다. 완전 늦은 것이다. 이렇게 늦어버린 이상에야 엄청 미안하다고 해야 하겠지. 전철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하유섬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는 양 아름다웠고 자동차와 같이 달리는 병용구간을 지나쳐 지하로 들어가며 급행으..
부다다다다닥. 아 진짜 시동이 안 걸린다. 안 걸리는 시동을 적어도 10분 안에는 걸어야 하는데 초크를 끝까지 당겨도 시동은 부다닥에서 멈춘다. 어차피 이런 녀석을 일상적으로 타고 다닌다는 것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는 일이겠지만 일단은 이런 차라도 감사하게 타고 다녀야 하겠지. 낡은 물방울 모양의 자동차를 타며 고속도로 하위차로의 모두에게 눈총이 섞인 신기함과 경외스러움이 그 자식들의 선팅된 차 유리 너머로 느껴지는 듯하다. 아이 부끄러워. 물방울 같은 이 차를 공방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미 계약해놓은 미니를 취소하고 이세타로 다시 받아왔다. 부들부들 떨리고 크기도 작아서 동네를 잠시 돌아보는 데에는 좋지만 그 외의 일로는 별로라는 실제 이용자의 말을 들어보자. 크기가 작아서 칼치기를 할래..
밤새 충전시켜놨던 차에 시동을 건다. 그리고 천천히 내달린다. 소리 없는 그 느낌이 좋다만 앞으로 누가 지나가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런 조용함에 취해서 졸면 안 된다. 그렇게 차를 몰아서 일단 환승주차장에 세워놓고 다시 열차에 오른다. 여기에서는 파크 앤 라이드가 일상이라 이렇게 해도 다들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에서도 하유에서는 화석연료 대신에 합성연료를 쓰는 나라이니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표어가 돌아다니고 선하고 순진하고 차분한 국민성의 사람들은 그것을 잘 지켜주니까 그런 애매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파크 앤 라이드가 불편한 점은 내 자동차가 계속 충전기에 꽂혀있는 통에 계속 내게 차 빼달라고 연락이 오는 정도이다. 그런데 나도 사실은 설치 중인 그 옆..
아닌 중에 갑자기 찾아온 녀석들을 본 그 밤에 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시중의 평범한 자동차가 싫다고 공방까지 찾아온 손님 앞에서 기절을 해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래서 일단 미니의 레플리카로 주문한 그 분들이 가시고 나는 한숨 돌려보려고 가슴쪽을 움켜잡고서 침대로 향했다. 누가 놓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먹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세인트존스워트인가 하는 풀 한 묶음이 침대 머리맡의 스툴 위에 놓여있었다.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고맙네. 그렇게 다시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 직원들을 다시 부르고 몇 개월 만에 드디어 집 대문을 나섰다. 내가 직접 조립한 미니에 시동을 걸고 북서쪽 공방으로 향했다. 밀린 주문이 많아서 언제 철판을 두드리고 엔진을 받아서 달고 자동차정비소에 보내서 배기..
기상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철은 정시에 출발했고 그렇게 출근하면 내 자리에 누군가 뭔가를 확인해 달라고 쪽지를 놓지. 사흘을 쉬어서 모두의 눈치가 보이는데 모두들 출석카드나 찍읍시다 하면서 또 무의미한 나날이 또 지나가는 것인가 하며 나른한 하품을 한다. 지난 사흘 간의 즐거움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면 그저 일에나 집중하자 하면서 몸에 해로운 독한 커피를 마시고 진짜로 일에 집중한다. 길가의 자동차와 트램이 아직 덜 깬 나에게 이제 괜찮냐고 물어보는 성 싶고 준비해야 하는 여러가지 기획이나 샘플을 살펴본다. 그러다가도 쏟아지는 것이 졸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겨내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즐거움을 위해서만 일하는 누군가는 없겠지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그렇게 따분하면 자동차로 출근할까 생각하며 5부제에 걸..
천천히 좌회전을 한다. 직진해오던 차가 멈춰서 상향등을 한 번 반짝여줬으니. 공방제 자동차가 영 깡통같은 것은 참을 만하다. 어차피 자동차를 타던 전철을 타던 여기는 한산하고 편하다. 그렇게 좀 멀리 떨어진 과수원에 직접 과일을 사러 간다. 푹신푹신하게 까닥이는 공방제 자동차를 몰다보면 역시 이게 재미있는거지 하면서 단숨에 4단까지 단을 올리고 남동중앙 출구까지 내달린다. 북동쪽의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풍경은 서쪽과 동쪽이 서로 다르다. 서쪽이 비교적 번화했고 동쪽은 한가로운 어느 도시들의 교외와 같은 풍경을 보이고 있다. 소와 돼지를 기르고 풀과 나무를 가꾸는 고요한 정경인 것이다. 지금, 과일 직거래를 위해서 사과 농장으로 가고 있는 내 옆으로 ..
분명 바깥에 누가 있다. 그렇게 몇 번을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이 섬에서 나를 부르러 오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나를 냅 둬. 나는 뭐를 잘못했는지 확실히 알아. 여러분의 상냥함이 나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도록 마법이라도 걸린 것일까? 나는 이제 공포 그 자체가 되는 느낌에 휩싸여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다들 나를 도와주겠지 하는 희망은 그냥 넘겨버리는 편이 좋을 정도로 나는 집 안의 모든 커튼을 걷고 그들이 쳐다보는 것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왠지 샷건을 들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하유에서는 총기소유 불법이고 경찰도 총을 들지 않아. 그렇다면 뭐야, 환각인가? 누가 나를 좀 살려주면 좋겠어! 내가 무너진다고! 아, 자동차 엔진 소리와 모터 소리! 전철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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