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안 쪽으로 걸어간다. 무엇이 보이냐 하면 악천후 시 통행금지라고 되어있는 바다 수면에 거의 닿게 되어있는 다리와 그 위를 놓여있는 왕복 2차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보였다. 인도에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으면 바다가 만져지는 신기한 도로라서 모두들 여기로 찾아오는 것이겠지. 그렇게 바닷가로 나있는 낮디낮은 다리를 건너며 저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걷는다.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그냥 해수면에 닿을락말락하는 다리의 건너편. 굳이 설명하자면 미개발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남동구와 카페가 들어선 예쁜 거리로 유명한 북동구의 경계 정도 되겠지. 어차피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데다 카페로 가기 위해서는 구계를 넘어야 하기도 해서 일단은 가까운 카페를 찾아 버스를 ..
내가 사는 곳은 이상한 곳이다. 그런 나라에서 오늘도 자동차 몰고 꽃배달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닐거고, 농사 짓고 꽃을 기르고 사탕무로 설탕 만들고 관광객 들이는 것으로 먹고사는 나라는 금방 망하니까 농사나 원예나 제당산업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BTL을 시도해 유전 없는 산유국이 된 작은 섬나라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하겠지. 그리고 백금은 비싸니까 다른 방법 없냐고 해서 찾아낸 메타포밍인가 하는 것으로 휘발유를 개질하는 것도 특이하다 하겠다. 또 이것을 주민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몇 년을 허비해서 외울 정도로 된 때에 최초의 주유소가 생기고 이렇게 꽃배달 다니는 녀석한테서 BTL이니 메타포밍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정상은 아니거든. 기름 얘기는 그 쯤하고 내가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살..
심각한 꿈을 꾸고 일어났다. 트램이 없어진 도로 때문에 집에 틀어박힌 내가 냄비를 돌려주려 뻘짓하는 꿈이었다. 도로에는 여전히 자동차와 달리는 트램이 건재했고 냄비 얘기는 꿈 속 얘기인 것 같다고 안심하자 새끼손가락을 물렸다. 푸른 요정 하나가 싫은 표정을 띄고 나타났지. 일단은 나가보자. 트램은 그대로 누군가를 태우고 여기저기로 떠나고 있다. 버스도 트램을 보조하고 있고 자동차와 택시는 그 둘을 경멸하는 것도 같았다. 망상이 아마도 꿈에서 나타난 느낌이다. 그런 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몰려있나 싶어서 그런가 싶어서 일단은 나가보았다. 남서쪽의 분주함이 여전히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어쩌겠어, 여기가 하유섬에서 제일 번화한 곳이니까 내가 적응해야 해. 추워서 옷을 껴입고 나가는 지금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오늘은 가게를 일찍 닫고 트램이 서는 정류장으로 뛰어갔어요. 그리고 바로 오는 것을 잡아타고 시내에 있는 다른 카페를 가봤지요. 저도 카페를 하는 입장이라 다른 카페에 들르면 배울 것도 많고 괜히 기분이 좋거든요. 같은 북서쪽에 있으니까 거기에서 오랫동안 있어도 되고 딱히 힘들거나 한 일이 없으면 눈을 감고 분위기도 음미하면 좋지요. 오늘 들러볼 곳은 왠지 온실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인데 저는 이런 곳이 부러워요. 여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클라우디 레몬에이드를 시켜서 자리에 앉아 기다립니다. 식사도 하고 싶어서 비둘기고기를 살짝 구워서 넣은 파이도 시켰어요. 이윽고 제 주문이 나오고 받으러 갑니다. 온실 분위기만큼이나 안도 레몬을 기르는 온실로 꾸며져 있더라고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기에 일찍 가게..
전철은 이내 남서주택단지역에 섰다. 개찰구를 나와서 카드를 찍고 지상으로 나온다. 트램이 없어진지는 좀 되었다. 그리고 트램이 없어지는데 대해서 나는 반대의견을 냈지만 주변에서는 저심도라도 해달라고 하는 통에 내 의견은 소수의견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멀리 보이던 바닷가를 이제 버스 차창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구나. 그 충격으로 내 집 앞의 도로를 보지 않으려는 버릇이 생겨서 매우 당황스러운 요즘, 아무런 감흥도 없이 이제 다른 곳과 비슷하게 변해가는 하유섬을 우려하면서도 그게 시대의 부름이라면 하고 단념한다. 아무리 섬이 작아서 버스로도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해도 굳이 트램을 없애야 했나 하는 것 때문에 나는 이미 마음도 내 집 대문도 걸어잠갔다. 아무도 이제 열지 못하리. 그리고 며칠 후, 누가 감..
좋을 대로 행동하세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망쳤다. 그러고나서 모든 것이 절연되었다. 이건 전철이 지나가면 전등이 절반이나 꺼지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끊겼다는 얘기다. 모든 것이 그 때부터 끊어졌다. 그렇게 끊어진 관계를 이어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매정하게 택시 뒷문이 닫히고 출발하고 만 그 시점에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돈 없어서 전철이나 타고 버스나 타고 다니는 내가 싫은 것이겠지. 착각이었다.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곱씹음이 멎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옥죄는 스트레스가 되어 더 나를 괴롭히고 하고 싶은 일도 나를 과로하게 하는 경우를 낳았다. 그래서 뭐가 어땠느냐. 집 밖을 나서며 인사하는 인형 한 놈에게 욕을 했고 전철 ..
어쩔 수 없이 심야버스를 타게 될 일이 생겼다. 이미 전철의 단전시간이 지났고 도시는 좀 있으면 일상을 시작하는 모두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에 놓인 선로와 고속도로를 따라서 심야 순환을 타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전철이 운행을 끝냈고 길거리의 자동차도 줄어들었고 이제 밤잠이 없는 모두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심야 급행버스 외에는 다니지 않는 그런 시간이라 모두들 버스 안에 카드를 찍거나 요금을 내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하유섬에 밤이 찾아오면 장난 치는 요정도 있고 상록숲에서 절망에 빠져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빨리 나가고 싶다. 심야버스가 출발한다. 상록숲을 벗어나 남북간선로로 들어가 속력을 내는 남서행 버스는 중앙도 지나쳐 바로 남서중앙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남..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숨어살듯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숨어살듯이 살지 말자고 하면 겁부터 난다. 여기 사람들은 우선 위로를 건네고 꽃이나 편지를 선물하는 것이 거의 국민성 수준으로 붙어있지만 그것도 서로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무작정 공영주차장에서 내 차를 끌고 나가본다. 겨우 주유소에서 기름만 채우고 다시 세워놓을 자동차라지만 가끔씩 이렇게 기름 채우러 몰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이미 채워놓은 기름이 오래돼서 시동이 잘 안 걸리건 말건 나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누굴 만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자주 외출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이다. 어차피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면 대부분의 장소를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하유는 작다. 가까운 주유소에 도착해서 휘발유 스탠드 앞..
보글거린다. 일단은 그렇게 표현하자.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서 찾아온 공원은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방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상태를 가만히 보다가 이러다간 죽어버릴 것 같다면서 말을 걸기도 하고 가만히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일단 나를 살피고 괜찮냐는 말을 넌지시 던지고 간다. 아름답구나. 시험정원을 돌아다니다가 묘목을 파는 누군가와 마주쳐서 심을 마당도 없는데 무화과나무 묘목을 사고 다시 길을 건너 집으로 가려고 하다가 그저 답답한 기분에 강가까지 뛰어가고 지쳐서 주저앉아 버리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전부 강물에 떠내려가서 주울 수도 없이 사라져가는 기분이다.
스튜를 해놓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적어도 오늘의 약속이 그랬다. 하지만 오지를 않는다. 어째서지 하면서 계속 기다릴까 하면 스튜가 끓어 넘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중요한 약속은 아니지만 이렇게 스튜까지 준비할 만큼이나 엄청 반가운 누군가라서 지금 나는 이렇게 많은 수고와 기다림으로 계속 애를 태우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집 앞의 도로에는 자동차와 버스, 트램이 한 길가를 달리고 집 안의 불가에서는 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그냥 어떻게든 기다리는 누군가가 빨리 나에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라 더더욱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찾아올 일이 없었기에 더더욱 오늘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누군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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