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꽤 괜찮다. 그렇게 몇 년을 살 정도면 어느 나라보다도 교통수단은 엄청 좋다 못해 과다공급 되고 있다는 뜻이지만 여긴 정말 대단하다. 버스도 철도도 트램도 대단하고 자가용을 갖고 다니는 것도 다른 나라들보다 쾌적하다. 다만 자가용 유지비가 비싼 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오늘도 내 차에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남서구는 전철을 타는 선택지가 탁월하지만 트램이 의외로 적절하게 움직여줘서 오히려 사고율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지하로 묻어달라는 민원도 많이 들어오지만 마을사무소와 구청이 씹어줘서 다행이야. 트램 노선을 중심으로 버스가 뻗어나간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나들목을 올라가 경계선 녹지를 지난다. 그렇게 중앙으로 들어서면 일단 나의 목적지이자 일터인 자동차 매장..
조그만 철길을 따라서 가는 화차의 안에는 사탕무가 한 가득 찼고 그렇게 오늘 일도 마무리되었다. 내 집은 여기에서 전철로 좀 더 가야 있는 상록숲 안의 오두막. 그래서 막 도착한 여기에서 친구 삼고 있는 토끼와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받아온 일당과 설탕 한 포대를 다락에 밀어 넣는다. 주워놓은 나뭇가지로 난로도 켜고 이제 저녁을 요리할 시간. 아아, 피곤하다. 사탕무 밭에서 잘 여문 것을 골라서 뽑느라고 여기저기가 더 마모되는 기분이 든다. 인형이라고 해서 덜 피곤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요정과 사람의 가까운 이웃 수준으로 지내다보니 기계장치로 인해 벌어지는 서로의 체력차이를 제외하면 별 차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더 피곤해서 물을 긷으러 가는 것을 미뤘다. 그런 불편함도 상록에서 사는 즐거움이니까. 다음 날..
정원과도 같지만 애매하다. 여기에 한시도 있기 싫다. 빨리 비자 기간을 줄여주고 본국의 의사를 불러 줘. 여기는 역시 삶을 영위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야. 다들 나를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기에 나를 보낸 새끼, 귀국하면 조각을 치겠어. 내가 여기로 발령난 것이 어언 3개월 전이다. 아마도 원예산업이 발달한 곳이니 마음도 가라앉힐 겸해서 정원에 갔다오라는 말이 여기로 귀양가라는 말일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또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비행기로 다섯 시간을 날아서 하유라는 외딴 나라에 도착하고는 처음 들른 카페에서 종업원들이 나는 컨셉을 잡고 움직이는지 알았고 전철을 타고 북동쪽의 사무실로 향하는 와중에 플랫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새하얀 소년이 내 상사라는 말에 또 놀랐으며 그..
비가 오고 있다. 일본어가 강세인 이 거리에서 나는 무슨 생각으로 서 있을까? 그것도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북동보다 남쪽으로 남동구에 속하는 이 곳에서 뭐를 하고 싶었을까?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처음 뵙겠다고 야옹거린 그게 전부다.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나아가고 싶은데 안 된다. 그게 다다. 뭐가 좋은건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어. 그리고 애매하고 우울한 여기 사람들의 본성이 나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서로서로 자기만의 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만 심하게 들어버리는 것이 나는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작정 택시를 잡는다. 깨져버린 것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고 비 오는 카페 창가에서 오늘도 기다리지만 안 돼. 여기 사람들은 절교하면 다시..
문득 잠에서 깼다. 왜건의 트렁크를 열고 뒷좌석을 다 젖힌 뒤에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아늑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상록숲 안 쪽의 호수에서 눈을 뜬다. 너무 늦게 잤나, 뻐근하다. 뒷좌석에 만들어놓은 잠자리를 치우고 식사를 하러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사실 이 자동차, 하유국에서 디젤을 못 태우게 해서 기름 다 빼고 들여와서 정비만 했는데 얼마 전에 블루크루드인가 뭔가가 풀려서 정말 한가로이 캠핑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여기, 상록구는 온통 숲이다. 북서쪽으로 달려 경계선녹지가 나오고 북서구 표지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래도 행정구역 하나를 이렇게 숲으로 나두고 가장 키 큰 나무보다 높은 건물을 못 짓게 하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자동차는 석유를 태운다며 시동 거는 순간부터 추방이라길래 오늘같..
올드카 통관에 대해서 알아보면 전부 다 포기하라는 답변이 달리네요. ABS, TPMS, VDC, OBD가 안 달린 자동차는 이제 등록이 전혀 안 된다고요. 하지만 진짜 타고 싶은 차가 있다면 등록해서 공도를 달린다는 것까지 가능해야 맞겠지만 이런 것들이 틀어막히면 이렇게 좌절이 심하던가요. 우선 제가 바라는 올드카는 이 녀석입니다. 시트로엥 2CV로 국내에 세 대 정도가 넘버 달고 다닌다 들었는데 해외에는 리스토어 해서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한국에는 정식 수입이 되기도 전에 단종되어 보기 힘들죠. 그리고 현재 법규에 따르면 극강의 깡통이라 어떻게 등록을 할 지도 문제고요. 그래서 저는 국민신문고에 다음과 같은 민원을 올렸다가 취하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교통상황은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리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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