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중에 갑자기 찾아온 녀석들을 본 그 밤에 기절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저 시중의 평범한 자동차가 싫다고 공방까지 찾아온 손님 앞에서 기절을 해도 예의가 아니겠지. 그래서 일단 미니의 레플리카로 주문한 그 분들이 가시고 나는 한숨 돌려보려고 가슴쪽을 움켜잡고서 침대로 향했다. 누가 놓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먹어요'라는 쪽지와 함께 세인트존스워트인가 하는 풀 한 묶음이 침대 머리맡의 스툴 위에 놓여있었다.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고맙네. 그렇게 다시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 직원들을 다시 부르고 몇 개월 만에 드디어 집 대문을 나섰다. 내가 직접 조립한 미니에 시동을 걸고 북서쪽 공방으로 향했다. 밀린 주문이 많아서 언제 철판을 두드리고 엔진을 받아서 달고 자동차정비소에 보내서 배기..
천천히 좌회전을 한다. 직진해오던 차가 멈춰서 상향등을 한 번 반짝여줬으니. 공방제 자동차가 영 깡통같은 것은 참을 만하다. 어차피 자동차를 타던 전철을 타던 여기는 한산하고 편하다. 그렇게 좀 멀리 떨어진 과수원에 직접 과일을 사러 간다. 푹신푹신하게 까닥이는 공방제 자동차를 몰다보면 역시 이게 재미있는거지 하면서 단숨에 4단까지 단을 올리고 남동중앙 출구까지 내달린다. 북동쪽의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선한 재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풍경은 서쪽과 동쪽이 서로 다르다. 서쪽이 비교적 번화했고 동쪽은 한가로운 어느 도시들의 교외와 같은 풍경을 보이고 있다. 소와 돼지를 기르고 풀과 나무를 가꾸는 고요한 정경인 것이다. 지금, 과일 직거래를 위해서 사과 농장으로 가고 있는 내 옆으로 ..
분명 바깥에 누가 있다. 그렇게 몇 번을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이 섬에서 나를 부르러 오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나를 냅 둬. 나는 뭐를 잘못했는지 확실히 알아. 여러분의 상냥함이 나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도록 마법이라도 걸린 것일까? 나는 이제 공포 그 자체가 되는 느낌에 휩싸여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다들 나를 도와주겠지 하는 희망은 그냥 넘겨버리는 편이 좋을 정도로 나는 집 안의 모든 커튼을 걷고 그들이 쳐다보는 것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왠지 샷건을 들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하유에서는 총기소유 불법이고 경찰도 총을 들지 않아. 그렇다면 뭐야, 환각인가? 누가 나를 좀 살려주면 좋겠어! 내가 무너진다고! 아, 자동차 엔진 소리와 모터 소리! 전철이 지..
전철은 병용궤도의 한 가운데에서 멈춘다. 춤추듯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켜고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잠에 드는 그런 일상, 식상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초고를 쓰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일상이다. 어차피 모두들 10시에 출근해서 17시면 전부 퇴근하니까 이게 일상일 뿐이지만. 출근은 역시 그렇듯이 버스 아니면 전철이다. 집 앞의 정류장에 버스가 먼저 오면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전철이 먼저 오면 병용궤도를 천천히 달리다가 중앙의 지하까지 급행으로 내달리는 전철을 목적지까지 타고 가는 식이다. 아침 출근도장을 찍고 교정받은 기삿거리를 정리하고 틀린 사실은 없는지 확인하고 보도자료와 대조하고 우선 내가 쓰는 언어인 영어로 작성해 공용어부에 넘기면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
언덕을 달려나온다. 내려오면서 기어를 바꾸고 다 내려오면 또 기어를 바꾼다. 공방제 자동차가 재미있고 하유국 산업 중에서 꽃과 나무하고 제일 거리가 먼 산업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 와중에도 이걸 또 수출하고 그러다니. 그래, 이게 사는거지. 차고에 차를 세워둔다. 자동차는 즐기는 목적이지 실용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비싸고 골치 아프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출근할 준비와 전철 시간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전철을 타고 중앙의 일자리로 출근한다. 서류는 챙겼고 오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체크하며 회사에 출근체크를 찍고 바로 만나야 할 첫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걱정하는 전화를 거니 차가 밀린다나. 자동차 회사 미팅인데 차가 밀려..
급행 시간에 댔다. 열차에 올라 도로 위를 같이 달리던 구간이 끝나면 내달리기 시작한다. 아직 시간은 많다. 하지만 오늘은 급행을 타고 출근한다. 열차는 정시 도착했다. 그렇게 북서쪽의 직장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소규모 중심지에서 부도심의 풍경을 지나면 경계선 녹지 근방에서 지하로 들어가 시내의 역 한 곳에 정차하고 이 열차는 급행이라 앞으로 두세 역에만 정차한다고 네 개의 공용어로 알리며 문을 닫고 출발한다. 오늘의 신문을 읽으며 열차가 내달리는 양 옆으로 지나가는 중앙의 풍경과 한 번 더 지하로 들어간 뒤에 나오면 나오는 온통 나무와 푸르름이 가득한 곳을 빗겨가는 차창, 그리고 다음 역은 내가 내려야 할 곳이다. 안녕하시오. 그렇게 도착하면 반겨주는 이는 청소부 뿐이다. 일찍 오셨다며 그렇게까지 일..
달콤한 산딸기.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아요. 앵두도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고 체리도 바구니를 채우고도 남아요. 달콤한 여름 과일들이 사늘한 이곳에서도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언제나 넉넉하게 많은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지요. 오늘도 남동쪽의 아침은 분주하답니다. 저는 동료들을 따라서 바구니를 들고 시중을 들었어요. '메이, 이 나뭇가지를 잡아주렴'이라거나 '메이, 손님이 오면 좀 부탁해'라던지 제가 되도록이면 무리하지 않게 해주셔요. 다만 제가 인형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거예요. 동화 속의 소풍 좋아하는 여자아이 풍의 옷을 입고 바구니를 들고서 과수원과 농원의 여러분들을 돕는게 저, 메이의 일이에요. 의외로 저는 운전을 할 줄 알아요! 그래서 시장통으로 깡통을 몰고서 과일을 팔러 가면 다들 좋은..
사늘한 여름과 하얀 겨울 날씨가 전형적이라 히터는 필요하지만 에어컨은 필요 없는, 철도와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동차 없이도 살 만하지만 자동차는 있어야 하는 1,210.5 제곱킬로미터의 작고 이상한 섬나라. 내가 사람들을 통솔하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하유국에서 추방될 수도 있는 룰을 들은체 만체하고 여울오름 물에 동전을 던지다 걸려서 추방당하거나 상록숲의 나무를 함부로 꺾어서 벌금을 물거나 상냥한 가이드가 사실은 자동인형이라는 사실에 놀라서 기절하거나 혹은 함부로 대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아주 난장판이다. 그래서 오늘부로 사표를 냈다. 외국인 문제 때문이냐고 하면 고개 끄덕일 수밖에. 사표는 수리됐다며 수고했다고 나가보란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도시의 풍경을 본다. 여느 곳이..
아아 평화로워서 좀 쑤시다. 하지만 달리 객기를 부릴 이유도 없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그저 퇴근하고 만원 버스에 끼어서 서늘한 여름 속의 열대를 즐기며 매화단지의 셋방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하유국에서는 거주지 대여를 나라에서 해준다는 것을 모르고 개인에게 방을 빌려서 사글세 내는 것도 빠듯하다. 아름다운 정원국가는 좆까라 그래. 그것도 돈 많아야 자가용을 굴리며 여기저기 다니며 느끼는거지 혈혈단신에 에스페란토를 쓰는 이민자 새끼를 반기는 곳이 여기 외에 없으니까 참는거다. 오늘도 주문을 받으면서 내가 이상한 말로 대답한다고 영어로 말하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는지 모르는데 에스페란토가 버젓이 표지판에 적혀있고 학교에서도 배운다지만 역시 사람들 듣기에는 이상하구나 하면서도 내 모어니까 다른 말을 배우기 ..
여기 꽤 괜찮다. 그렇게 몇 년을 살 정도면 어느 나라보다도 교통수단은 엄청 좋다 못해 과다공급 되고 있다는 뜻이지만 여긴 정말 대단하다. 버스도 철도도 트램도 대단하고 자가용을 갖고 다니는 것도 다른 나라들보다 쾌적하다. 다만 자가용 유지비가 비싼 편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오늘도 내 차에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나간다. 내가 살고 있는 남서구는 전철을 타는 선택지가 탁월하지만 트램이 의외로 적절하게 움직여줘서 오히려 사고율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지하로 묻어달라는 민원도 많이 들어오지만 마을사무소와 구청이 씹어줘서 다행이야. 트램 노선을 중심으로 버스가 뻗어나간다.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나들목을 올라가 경계선 녹지를 지난다. 그렇게 중앙으로 들어서면 일단 나의 목적지이자 일터인 자동차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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