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이 가득한 남부의 어떤 마을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로든 가도 싶었기에 일단은 어디론가 나온 것이죠. 모내기가 끝나고 박하는 꽃이 지는 서늘한 여름의 정경이 펼쳐지는 그 풍경을 경쾌하게 달리다가 문득 정차대에 차를 세우고 잠시 걸어봅니다. 길을 잃어서요. 이내 차에 다시 타고 우회전. 쭈욱 펼쳐지는 낮은 주택단지를 지나 어느 박하밭이 펼쳐집니다. 내려서 향기를 맡으려고요. 이런 풍경이 있는 삶은 정말 아름답지요. 주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생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즉석에서 물을 끓이고 박하잎을 띄워서 박하차를 즐기고 조금 수확하기도 해요. 어차피 집에 도착하면 시들어서 난감해지겠지만. 향이 좋아서 멍하니 그 곳에 있습니다. 조그만 멧밭쥐와 장난 치기 좋아하는 요정이 박하밭에 나타나고 여기에서 멍..
서울전차가 왜 없어졌게요? 결과만 까놓고 말하면 정책 실패예요. 김현옥은 공격적인 개발에나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버스 증차나 택시 증차만 하고 와우 아파트 짓는데 정신이 팔려서 전차궤도 보수나 전차 차량 도입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증차시킨 버스와 택시가 도로 정체를 일으키죠. 그래서 일단 바로 뜯어버리기는 뭐하니까 외곽 이전 얘기를 하고 뭐하고 하면서 전차가 낡은 흉물이고 일단 전차는 뜯고서 지하철도를 짓는 겸 도로를 넓히자고 한거죠. 그리고 시민들과 전차 종업원들의 반대에도 서울전차는 폐지되며 전차 종업원들은 그토록 경멸스러운 버스와 택시를 몰게 돼요. 외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냐고요? 일단 미국 전차 스캔들이 있고 일본 쿄토 시영전차 폐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해요. 심지어 제가 언급..
고속도로 휴게소. 이게 웬 연기냐고 하는 소리에 일단 바이패스 관 쪽으로 열린 밸브를 엔진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귀찮으니 블로어를 공기구멍에 꽂고 초크를 살살 넣으면서 시동을 걸어본다. 부다다다다닥. 다시 밸브를 바이패스 쪽으로, 그리고 불을 댕겨보니 바로 꺼진다. 그러니까 화통이 내 노력을 배신하고 있는 셈이다. 일이 생겨서 잠시 남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상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낭패를 봤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쳐서 잠시 쉬러 온 사람들에게 연기를 뿜는 자동차라는 진귀한 것만 보여주고 일단 다시 바이패스 관에 불을 댕겨본다. 오렌지빛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제 밸브를 엔진 쪽으로 넣고 초크를 조금 당겨서 시동을 건다. 고속도로 본선으로 들어가 다음 출구에서 나가야 한다. 상록숲으로 들어오는 목..
다시끔 공기구멍에 불을 댕긴다. 그리고 맨 윗쪽의 뚜껑을 열어 나무토막을 집어넣고 공기구멍에 죽어라고 풀무질을 한다. 적어도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는 해야 자동차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목탄가스가 나오는 관에 불이 붙는 것을 확인하고 그 관을 엔진 쪽에 끼워 겨우 목탄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 걸려서 오늘 하루도 버리나 했다. 상록숲에 살면서 목탄차를 몬다는 것은 거의 요정들에게 돌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역의 일이지만 나는 구태여 이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상록숲 안에는 요정들의 부탁으로 주유소가 없고 솔방울과 나뭇가지는 구하기 쉽다. 그리고 여차하면 뭔가를 구워먹을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의 스쿠터에도 화통을 달아줬는데 별 불만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고, 화..
역시 실패다. 오늘도 옆 차를 박을 뻔했다. 그러나저러나 하유에서 차고지 증명을 엄격하게 하고 있어서 다른 넓은 곳에 세우기도 힘들다. 이렇게저렇게 커다란 중형차를 모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운전한 지 몇 년 안 된 입장에서는 주차가 하기 너무 힘든 법이다. 덕분에 공영보험 쪽에서는 가입자들에게 운전법 연수를 해주고 있고 해보았지만 강사가 주차에 노이로제 있냐고 버럭거릴 정도면 나는 틀렸어. 일단 전면주차는 잘 하겠는데 평행주차와 후면주차는 늘지를 않는다. 일단 뒤를 봐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 그 때문에 불안함이 커서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 있겠지.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라인에 들어가면 수정을 최소화 하라는 강사의 불호령이나 듣고 이건 좀 너무하다고 말하면 강사는 오늘 퇴근한다는 말과 함..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늘한 여름 한낮이었어요. 날이 좋아서 공영주차장에서 스쿠터를 꺼내왔죠. 시동이 걸리려나 모르겠는데 여하튼 걸려줬으면 좋겠네. 좀처럼 탈 일이 없고 많이 걸어다니니까 자동차세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주유할 검 타려고요. 시동이 계속 걸리다 말다해서 뒤로 밀면서 겨우 걸었어요. 일단 주유소로 갑니다. 휘발유를 넣겠죠. 그리고 딸려있는 편의점에서 충분한 간식거리와 물을 사서 짐칸에 넣지요. 그리고 언제 기름값이 올랐나요 하면서 영수증을 찡그린 얼굴로 확인하고 돈 내고 출발. 많이 올라서 기분이 좀 상하네요. 주유소를 벗어나서 트램과 함께 달리는 도로를 따라 남동구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스로틀을 당깁니다. 파도에 잠기는 낮은 다리를 건널거예요. 잠수교 입구에 있는 해일이나 풍..
오늘도 차를 몰고 사탕무가 자라는 너른 밭으로 들어간다. 설탕이 만들어지는 그 장소를 지나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 너머로 합성석유 공장이 있다. 설탕 만드는 곳에 합성석유 공장은 왜 있냐 하겠지만 여긴 하유섬이다. 중동산 원유를 아예 안 들여온다고. 그 안에서 모두와 인사하며 사탕무 찌꺼기를 알코올로 만든 것을 메타포밍 반응기에 넣고 제올라이트 촉매가 어떻게 반응되는지 그려진 도표를 지나 새로 도입된 또 하나의 메타포밍 반응기를 본다. 공장 내부에 은근히 자리가 많아서 놓을 자리는 충분했다고 하네. 나는 여기에서 휘발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입장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알코올에 의한 나프타 개질은 마법이다. 솔직히 나프타에 알코올 섞고 제올라이트 촉매를 넣어 반응시키면 옥탄가가 올라간다는 것이 ..
솔직히 그랬다. 그리고 자동차를 팔아도 팔아치운 돈은 바로 들어오지 않을거라면서 나를 좌절시키는 딜라 새끼가 양아치 같다고 그 곳을 나오며 질러대고 집으로 가는 트램에 오른다. 사고처리가 스트레스를 불러와서 그런가, 내 집과 가까운 트램 정류장이 무슨 저심도 지하에 있는 줄 착각했던 나는 이제 정신을 조금씩 차렸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렸다. 이유야 자본가 새끼들이 늘 그렇듯 네놈이 지각하면 너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손해라며 어깨를 두드리며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하면서 너는 짤렸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하며 퇴직금을 선물이라고 주며 내쫓는 것을 당한 것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교통카드 충전하고 전부 통장으로 들어갔지마는 갚아야 하는 청구서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차피 올 청구서에는 관심을 끄고 지냈으며 집 앞..
하기 싫은 일들을 무더기로 겪고 있어서 힘든 와중을 보내고 있지요. 날씨는 갈수록 더워지고 모두들 이럴 때는 카페에 가서 쉬어야 맞지만 일은 해야 한다고들 하지요. 트램 안에서도 분주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그렇게 도착한 시험정원에서 향기로운 여름 꽃냄새를 맡았죠. 향기로웠어요. 하여튼 이렇고 있는 일들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약간 숙여 정류장에서 도로를 바라봐요. 타고 온 트램이 떠나가고 자동차와 버스가 분주해요. 안녕, 귀여운 인형이네. 모두들 나를 보고는 인사하지요. 그래서 북동쪽에 사냐고 물어보는데 아뇨, 저는 남서쪽 살아요 하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더운 탓에 널부러진 고양이와 함께 벤치에 널부러지기도 하고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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