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디자인의 작은 차체에 1L 이하의 원 로터 반켈엔진, 3단 이상의 수동변속기, 네 명이 탈 수 있고 트렁크에는 여행가방 두 개 이상이 들어갈 것과 고속도로 주행을 보장하기 위해 공랭과 수냉 중에 적합한 형태를 취할 것, B세그먼트의 보편적 정의를 초과하지 말 것" 정부로 받은 주문은 나를 벙 찌게 했다. 이건 하유국 공업수준으로는 자살하라는 소리입니다라고 했는데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유에는 철공소가 없고 또한 만들기도 힘들다고 말했고 이런 엔진은 애저녁에 다른 제조사들이 해보고 던진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엔진을 사오면 된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져서 하유로 배달이 되는 원 로터 엔진을 구해본다. 그리고 철판이 얼마나 남는지, 엔진을 고르기도 전에 손님이 취소시..
지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맑고 깨끗한 정원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지루함을 덜 수는 없는 노릇이고 동네라도 걸어서 나가보기로 한다. 하유의 서늘한 여름 날씨가 포근하기만 해서 일단은 카디건 하나만 걸쳐도 괜찮을 지금. 어차피 동네만 돌다가 끝날텐데 뭘. 트램과 자동차가 같이 쓰는 도로 위 횡단보도를 지나 시험정원에 들어서면 여름의 해당화가 피어있거나 하고 미여울에서 날아온 거위가 꽥꽥거리며 뭔가를 뺏으려는 듯이 낮게 나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 것도 없어. 으아아악. 거위가 막 푸덕거리며 다가오기에 일단 거위를 피해 시험정원을 나와 남서중앙으로 나온다. 자동차 쇼룸과 그 옆에 있는 카페, 그리고 웃으며 다가오는 인형 하나. 하지만 지금 어울려주지는 않을래. 너도 다른..
비가 내렸어요. 그래서 남동에서 북동으로 가는 잠수교는 물에 잠겼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나가는 일은 비가 온다고 끝나지는 않지만 오늘은 별 수 없이 고속도로를 타야 하겠네요. 통행료가 짜증나서 이용하기 싫지만요. 하지만 그게 뭐, 내야 하면 내야하는 것이겠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렇게 최고속도 110의 고속도로로 들어갑니다. 자동차들 사이로 추월하는 것은 하유섬에서 불법이라 얌전히 3차로를 밟고 갑니다. 비가 많이 와서 오히려 하위차로가 위험한 날이에요. 큰 차는 많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꽤 무서워요. 계속해서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것은 무리이기도 해서 상록숲 쪽으로 돌을 맞더라도 상록숲을 지나서 가야 하겠죠. 휴게소를 지나쳐서 시속 100을 맞추며 요란스럽게 움직이고 헬멧이 ..
숯이나 뭔가를 태우면 나오는 합성가스를 철과 반응시키면 합성석유가 되고 합성석유를 증류하면 나프타가 나오는데 거기에 알코올을 섞고 제올라이트와 반응시키면 고옥탄가의 휘발유가 된다. 너무 많이 외웠다. 하지만 이 탓에 또 항의 문건이 하유제당 에너지부 앞으로 왔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화석연료 안 쓴다고 기만하는 꼴이 참 보기 좋다는 투의 가리비 기름 회사의 서신인데 이 나라 어느 숲 속 요정들에게 화석연료 팔아먹는 불한당이라고 린치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아아 피곤하다. 얼마 전에는 하이브리드에 염증이 나서 팔아버리고 공방에서 올드 피아트의 레플리카를 하나 샀다. 주문 취소분이고 싸게 드린대서 차를 팔은 값으로 또 차를 사다니 이런 바보가 다 있나. 귀엽고 동그란 눈을 가진 작은 차를 몰고 상록숲에..
논밭이 가득한 남부의 어떤 마을입니다. 자동차를 몰고 어디로든 가도 싶었기에 일단은 어디론가 나온 것이죠. 모내기가 끝나고 박하는 꽃이 지는 서늘한 여름의 정경이 펼쳐지는 그 풍경을 경쾌하게 달리다가 문득 정차대에 차를 세우고 잠시 걸어봅니다. 길을 잃어서요. 이내 차에 다시 타고 우회전. 쭈욱 펼쳐지는 낮은 주택단지를 지나 어느 박하밭이 펼쳐집니다. 내려서 향기를 맡으려고요. 이런 풍경이 있는 삶은 정말 아름답지요. 주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생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즉석에서 물을 끓이고 박하잎을 띄워서 박하차를 즐기고 조금 수확하기도 해요. 어차피 집에 도착하면 시들어서 난감해지겠지만. 향이 좋아서 멍하니 그 곳에 있습니다. 조그만 멧밭쥐와 장난 치기 좋아하는 요정이 박하밭에 나타나고 여기에서 멍..
고속도로 휴게소. 이게 웬 연기냐고 하는 소리에 일단 바이패스 관 쪽으로 열린 밸브를 엔진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귀찮으니 블로어를 공기구멍에 꽂고 초크를 살살 넣으면서 시동을 걸어본다. 부다다다다닥. 다시 밸브를 바이패스 쪽으로, 그리고 불을 댕겨보니 바로 꺼진다. 그러니까 화통이 내 노력을 배신하고 있는 셈이다. 일이 생겨서 잠시 남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상록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낭패를 봤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쳐서 잠시 쉬러 온 사람들에게 연기를 뿜는 자동차라는 진귀한 것만 보여주고 일단 다시 바이패스 관에 불을 댕겨본다. 오렌지빛 불꽃이 피어오른다. 이제 밸브를 엔진 쪽으로 넣고 초크를 조금 당겨서 시동을 건다. 고속도로 본선으로 들어가 다음 출구에서 나가야 한다. 상록숲으로 들어오는 목..
다시끔 공기구멍에 불을 댕긴다. 그리고 맨 윗쪽의 뚜껑을 열어 나무토막을 집어넣고 공기구멍에 죽어라고 풀무질을 한다. 적어도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는 해야 자동차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목탄가스가 나오는 관에 불이 붙는 것을 확인하고 그 관을 엔진 쪽에 끼워 겨우 목탄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 걸려서 오늘 하루도 버리나 했다. 상록숲에 살면서 목탄차를 몬다는 것은 거의 요정들에게 돌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영역의 일이지만 나는 구태여 이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상록숲 안에는 요정들의 부탁으로 주유소가 없고 솔방울과 나뭇가지는 구하기 쉽다. 그리고 여차하면 뭔가를 구워먹을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의 스쿠터에도 화통을 달아줬는데 별 불만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고, 화..
역시 실패다. 오늘도 옆 차를 박을 뻔했다. 그러나저러나 하유에서 차고지 증명을 엄격하게 하고 있어서 다른 넓은 곳에 세우기도 힘들다. 이렇게저렇게 커다란 중형차를 모는 입장에서는, 그것도 운전한 지 몇 년 안 된 입장에서는 주차가 하기 너무 힘든 법이다. 덕분에 공영보험 쪽에서는 가입자들에게 운전법 연수를 해주고 있고 해보았지만 강사가 주차에 노이로제 있냐고 버럭거릴 정도면 나는 틀렸어. 일단 전면주차는 잘 하겠는데 평행주차와 후면주차는 늘지를 않는다. 일단 뒤를 봐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 그 때문에 불안함이 커서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 있겠지.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라인에 들어가면 수정을 최소화 하라는 강사의 불호령이나 듣고 이건 좀 너무하다고 말하면 강사는 오늘 퇴근한다는 말과 함..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서늘한 여름 한낮이었어요. 날이 좋아서 공영주차장에서 스쿠터를 꺼내왔죠. 시동이 걸리려나 모르겠는데 여하튼 걸려줬으면 좋겠네. 좀처럼 탈 일이 없고 많이 걸어다니니까 자동차세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주유할 검 타려고요. 시동이 계속 걸리다 말다해서 뒤로 밀면서 겨우 걸었어요. 일단 주유소로 갑니다. 휘발유를 넣겠죠. 그리고 딸려있는 편의점에서 충분한 간식거리와 물을 사서 짐칸에 넣지요. 그리고 언제 기름값이 올랐나요 하면서 영수증을 찡그린 얼굴로 확인하고 돈 내고 출발. 많이 올라서 기분이 좀 상하네요. 주유소를 벗어나서 트램과 함께 달리는 도로를 따라 남동구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 계속 스로틀을 당깁니다. 파도에 잠기는 낮은 다리를 건널거예요. 잠수교 입구에 있는 해일이나 풍..
오늘도 차를 몰고 사탕무가 자라는 너른 밭으로 들어간다. 설탕이 만들어지는 그 장소를 지나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 너머로 합성석유 공장이 있다. 설탕 만드는 곳에 합성석유 공장은 왜 있냐 하겠지만 여긴 하유섬이다. 중동산 원유를 아예 안 들여온다고. 그 안에서 모두와 인사하며 사탕무 찌꺼기를 알코올로 만든 것을 메타포밍 반응기에 넣고 제올라이트 촉매가 어떻게 반응되는지 그려진 도표를 지나 새로 도입된 또 하나의 메타포밍 반응기를 본다. 공장 내부에 은근히 자리가 많아서 놓을 자리는 충분했다고 하네. 나는 여기에서 휘발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입장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알코올에 의한 나프타 개질은 마법이다. 솔직히 나프타에 알코올 섞고 제올라이트 촉매를 넣어 반응시키면 옥탄가가 올라간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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