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귀여운 세계와 그 한가운데에서 그 어떤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나와 곱게 갈아서 잼 병에 담아 물을 붓고 차가운 돌틈에 하룻밤 나두면 내려지는 커피와 순한 폭군인 상냥한 토끼, 그리고 월귤나무 열매의 빨간색을 가만히 지켜보며 감탄하는 나. 몽롱한 어느 섬과 그 섬에 심긴 나무들을 살펴보아요. 백리향과 복숭아, 무화과와 로즈메리, 커피와 육계, 또한 라벤더. 또한 그 곳에도 있는 토끼와 고양이, 그리고 너무 상냥하고 마음이 여리면서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유약한 요정들이 그곳에. 우울한 꿈이에요. 깨고싶지 않아. 매우 귀엽고 아름다운데다 라벤더 밭은 넓어서 마치 보랏빛 천과 같고 향기로워요. 현실이 아니고 그저 나는 꿈을 꾸고 있겠죠. 마음씨가 착하고 여린 요정들, 아니 착하고 여린 마음..
심한 우울함이 와서 일찍 잠들게 되면 희미하게 기억나는 동화적인 꿈을 꾸게 된다. 깊게 잠들기 직전, 완전히 잠든 것도 아니라서 눈을 떠서 방을 살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의식이 잠들어 있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말이다. 꿈에서 소심한 소년과 상냥하고 위로하기 좋아하지만 꽤 심약한 메이드와 집사 남매를 만났어 소심한 소년은 칭얼대고 심약한 도우미 남매는 다 괜찮을거라고 푹 쉬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부디 불러달라고 나를 위로했는데 나는 그 아이들이 전부 불쾌했어. 왜 이렇게 기억나는 꿈에서는 동화적인 배경에 심약하고 상냥한데다 착해서 왠지 불쾌해지는 아이들과 나는 왜 뭔가를 잃어버린건가 하는 생각에 잠겨서 잠시나마 행복해지는거지. 그리고 왜 그 아이들은 나를 보고 자기랑 같다고 할까나. 그렇게 희미하..
"저는 하자품입니다. 어서 버려주세요." 나와 어느정도 같이 있었던 안드로이드 녀석이 갑자기 에러를 뿜은 것은 한 3년 전 정도였다. 자기를 하자품 내지는 검수가 되지 않은 불량품으로 취급하며 나한테 꼭 우울한 아이처럼 안겨서 울기도 하고 내가 돌아오는 시간 즈음에는 우울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수리를 맡겨도, 좀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그 아이에게 물어봐도 문제없다는 결과만 계속 나왔다. 안드로이드 녀석들이 우울증 걸리거나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고 자부하던 안드로이드 녀석들 수리에 짬이 차오른 수리기사도 '이쯤되면 평범한 사람의 우울증 수준'이라면서 모르겠다고, 리셋해드릴까 하는데 제발 이 아이 리셋은 하지 말아 줘. 그냥 우울한 안드로이드의 주인으로서 그 아이가 갸웃..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은 공포다. 그래서 그 공포를 무마하기 위해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며 관철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해서 해결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지는 것이나 아니면 관철의 과정에 격정이 올라오는 것이나 비슷하다면 둘 중에 하나만 하게 되었으면. 그리고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만큼이나 많은 판단을 요구하는 복잡한 체계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사람에게 실망하는 누군가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은 사람 대신에 인형을 좋아하기도 한다. 인형이 아니라 그 다른 무언가일 가능성도 높다. 대다수는 마약에 손을 대거나 재미로 사람을 죽이거나 돈에 미쳐서 무슨 일이든 한다. 이렇듯 쾌락범으로 굴러떨어지는 부류보다야 인형에 매료..
운전면허를 땄을 때요.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운전면허를 따기 몇 년 전에는 자전거 사고를 낸 적이 있어서 겁도 많이 났고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는 자동차 면허를 저만 무섭다고서 안 갖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장내기능이 강화될지 모른다는 소리에 저는 용기를 내버렸답니다! 그리고 필기와 장내기능은 단번에 붙었지요. 다만 문제는 도로주행이었어요. 무섭더라고요.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첫 도전 때는 계속 거친 쉼호흡을 쉬며 코스를 돌았어요. 불안해하는 것, 그게 감점요소일 줄은 모르고서 점수 미달로 첫 도전 탈락, 두번째는 황신호에 진행해서 신호위반 실격, 세번째도 점수 미달이었지요. 그래서 네번째 도전을 하는 날이 왔답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 것이 제일 연습을 안 했던 코스가 걸렸던거죠. 두려움이 있었지만 ..
어느 교외궤도의 아침이다. 원래 숲의 나무를 쉽게 나르기 위해 만든 폭이 굉장히 좁은 철로지만 지금은 그 숲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에게 시내버스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는 고마운 철로에 오늘도 전기기관차와 증기기관차가 구른다. 하지만 역시 요새는 사람들이 숲 주변의 마을을 떠나가는 중이라 이 교외궤도도 얼마 후면 없어질 수 있는 운명에 처했다. 얼마 남지않은 마을 사람들과 조그마한 화물과 편지들을 싣고서 보통의 전철보다도 작은 열차가 자신보다 네 배는 큰 열차 옆에 정차했다. 그렇게 더 큰 마을로, 도시로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그마한 교외궤도 열차가 역에서 통표를 바꾸고 방향을 바꿔 마을로 돌아가는 모습을, 나는 한참동안이나 교외궤도 열차가 서는 그 정류장에 서서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보았다. 그렇게..
무모순은 자기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나로 있음으로 무모순이라 한다면 내가 나를 이해 못하는 그런 상황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거나 혹은 논리 오류인가? 아니면 이 생각 자체가 논리 비약인가? 생각이 비약 그 자체인 병아리는 비약비약하고 웁니다만 중학교 수학 수준으로 그나마 쉽게 저에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설명해주실 분이 계신다면 정말 평생의 은인으로 삼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리가 무모순을 자꾸 증명해달라고 해서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쭉 수포자라서 중학교 수학 정도의 이해가 한계입니다. 하지만 중학교 수학 정도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저마저도 그 사람은 필즈상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개인 심리문제의 수학적이며..
차라리 내가 안드로이드이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다. 사람에게 환멸한 것도 있고 내가 움직이는게 같잖다면 죽여버리면 도덕성의 해이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과는 달리, 안드로이드는 망가뜨리거나 방전상태로 방치해도 괜찮잖아. 그러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상냥함을 불안함과 공포 때문에 개인적인 약함으로 치부해 숨기고 독기에 가득찬 듯이 행동하고 사람을 믿지 않는 인간보다 정교한 인공지능에 의해 판단하고 사람에게 상냥할 수 밖에 없는 안드로이드가 낫다. 하지만 정교한 인공지능일수록 정신질환의 문제가…. 결국 사람과 거의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존재한다고 하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사람처럼 사고할텐데 그러면 사람들이 감정이나 사고가 폭주하는 것 때문에 경험하는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이 인공지능에게도 발현되지 않을까 ..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겨울이면 특히 그렇다. 그렇게 나는 이불에서 꼬물거리면서 푸른 요정과 말을 하려고도 하고 부끄럼도 타면서 여러가지 꿈을 꿨다. 하지만 그게 뭔 소용이고 무슨 일이던지 하지 못한 후회라던지는 나중으로 놓고 지금은 지금으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것 뿐이었다. 그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잠에 다시 들고 싶을 뿐이었다. 푸른 요정이 걱정하며 내게 말하기를, 꿈이 선명하다면 꿈으로 도망칠 것 같다고 걱정스럽게 전해주었다. 푸른 요정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하며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인과관계가 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 아이의 손을 살며시 잡고 나는 그 아이에게 차라리 현실보다 꿈이 좋다고 말하자 그 아이는 내 손을 들어서 입으로 가까이 가져가서 그저 과자를..
세상에서 가장 폭신한 곳에서 가장 부드러운 상냥한 대접을 받고 굉장히 기분좋게 달콤한 차를 마시고는 상당히 기분이 사랑스러워졌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상처입히고 다들 자신이 옳다고 해요. 나는 말할 수도 없고 서로 얘기를 하며 풀어나갈 수 있는 내용에 칼을 겨누기 시작해요. 그리고 비로소 꿈을 꿔야만 사랑스러운 기분으로 살 수 있게 돼요. 왜 망가졌을까요. 슬퍼요. 나도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굉장히 못난 사람이라 이래서 짜증이 나고 힘들어하는지도요. 이불 밖은 폭신하고 부드럽지 않으니까 짜증이 나고 꿈도 꿀 수 없고 나는 그저 망해갈 뿐으로 꿈은 그에 비해서 아름답습니다. 순한 여우, 고양이와 내 마음을 깃들인 인형들이 있어요. 그런 곳에서 전부 나와 같다는 생각과 점점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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